2012년 9월 8일 토요일

초기그리스도인들의 역사와 박해1 - 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안상홍님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역사와 박해1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 안상홍님

"나는 86년 동안 그분을 섬겨왔는데 그동안 그분은 한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신 적이 없다 그런데 내가 어찌 이제까지 섬겨온 나의 왕 그리스도를 모독할 수 있겠는가?" -폴리캅-

고대 아테나고라스(athenagoras)에 따르면 기독교인이 박해를 받은 원인이 "무신론과 식인풍습, 근친상간"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독교인이 핍박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황제 숭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로마 제국의 수호신이라고 믿고 있던 황제에 대한 숭배를 거부하는 것은 곧 로마 제국의 안녕을 위협하는 반 국가적인 행위와 마찬가지였다. 자연히 로마의 재난이 발생할 때 마다 기독교인은 비난의 대상의 되었으며, 사자들의 밥이 되었다. 이와같은 박해의 시작은 네로 황제때부터 313년 콘스탄틴과 리키니우스 두 황제에 의하여 기독교가 공인되기까지 계속되었다. 초대 교회 박해는 크게 황제의 고의에 의하여 시작된 1차 박해기간(약 A.D.64-96), 지엽적,국부적으로 진행된 2차 박해기간(약 A.D.98-249)그리고 전국적으로 박해가 진행된 3차 박해기간 (A.D.250-313)으로 대별할 수 있다.


Ⅰ. 제 1차 박해기간(A.D.64-96)


1. 네로 황제 박해
네로 황제가 재임하던 주후 64년에 발생한 대화제 사건은 기독교 역사에 잊을 수 없는 분기점이 되었다. 그가 통치하던 주후 64년 네로는 로마에 발생한 대화제 사건의 원인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린후 극심하게 박해하기 시작했다. 당시 일반들에게 기독교가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네로는 자연스럽게 로마의 대화재 사건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려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수에토니우스(syetibius)가 기독교인들이 형벌을 받은 원인을 기술하면서 " 새롭고 사악한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단체인 그리스도인들 "이라는 표현속에서 찾아볼수 있다. 또한 타키투스도 기독교를 가리켜 "매우 위험한 미신 " 표현에 비추어 볼 때 당시 사람들은 기독교를 옳게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로마의 대화제 사건은 한 인간의 광적인 잔학성을 충죽시키기 위함이었다. 타키투스는 그의 연대기에서 광적인 잔학성을 충죽시키기 위해 그리스도인을 죽였다고 말하고 있다. 유세비우스도 네로의 '극단적인 광기' 때문에 그의 생모와 아내 , 수천명의 사람들을 죽였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통치권을 확고히 다진 네로가 사악한 계획을 세우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신앙을 대적하여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타기투스의 연대 , 로마의 클레멘트 <고린도에 보낸 서신 > , 고린도의 디오니시우스의 설교를 통해서 네로의 잔학성과 하나님을 인정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을 알수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짐승의 가죽으로 싸서 개들에 의해 찢기우기도 하고 십자가에 못박혔다 . 혹은 화형이 되어, 해진후 밤을 밝히는 일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네로는 그 광경을 위해 자신의 정원들의 개방하고 자신은 기수의 복장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아니면 마차를 몰고 다녔고 그동안 서커스에스는 쇼가 공연되었다. 그러므로 가혹하고 본보기적인 형벌을 받기에 마땅한 범죄자들이라 할지라도 사람들 사이에 동정심이 생긴 것은 사실상 그 일이 공중의 선을 위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광적인 잔학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 타기투스의 연대기 중에서)

"우리는 훌륭한 사도들을 면밀히 살펴보시다. 베드로는 한 두 번이 아닌 여러 번의 노력을 통하여 불의를 극복하였으며 따 라서 그의 증거는 영광의 자리에 도달했던것입니다. 열정과 노력으로 바울은 인내의 상을 받앗습니다.....바울은 동서에 복음을 전했을 때 그는 자신의 믿음에 합당한 고귀한 명성을 얻었습니다." (로마의 클레멘트 고린도에 보낸 서신 5장 )

"당신은 이처럼 이 권면에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와 고린도에 심어 놓은 번영의 씨앗을 섞어 놓았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에 순교했다." (고린도의 감독 디오니시우스의 설교중에서)


2. 도미티안 황제 박해
도미티안 황제는 모든 면에서 네로의 전철을 밝았다고 한다. 유세비우스는 네로와 도미티안의 박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그는 로마에서 상당히 많은 귀족들과 저명인사들을 부당하게 살해했고.....마침내 그는 하나님을 미워하고 적대하는 일에 있어 네로의 후계자가 되었고 " 또한 터툴리안도 도미티안이 네로와 " 동일한 일"을 행하려 했으며 " 잔인성에 있어서 실질적인 네로의 후계자였다"고 말한다. 도미티안 자신의 아내였던 도미틸라를 유배시키는 한편, 그의 집정관이었던 자신의 조카 플라비우스 클렌멘스와 그의 두 아들을 살해했다. 사도 요한이 말씀을 증거하였다는 이유로 밧모섬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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