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8일 토요일

초기그리스도인들의 역사와 박해2 - 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안상홍님

초기그리스도인들의 역사와 박해2 - 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안상홍님


Ⅱ. 2차 박해 기간 (A.D 98-249)

2차 박해 기간(트리얀 황제 A.D98-117 ,안토니우스 피우스 A.D.138-161)동안에는 박해는 지역에 따라 국부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드러나더라도 그에게는 신앙을 부인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 특징이라고 할수 있다.


1. 트라얀 황제치하의 박해
트리얀의 칙령에서는 네로와 같이 임의적인 박해를 가하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칙령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 첫째는 의도적인 색출은 금한다는 것과 둘째는 익명의 고소는 정부가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 그리고 셋째는 과거에는 그리스도인이었지만, 현재 아니라면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칙령으로 인해 혹독한 박해는 어는 정도 완화되었으며 그리스도인들을 " 잡아들이기 " 위한 수색은 금지되었다.


2. 하드리안 통치의 박해
하드리안은 125년경 아시아의 총독 미누시우스 푼다누스에게 보낸 서신에서 정당한 재판을 거치지 않고서는 기독교인을 처형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이 하드라인의 칙령은 비기독교인들로부터 근거없는 모함을 받는 것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합당한 법적 절차가 있는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며 , 그 재판도 분명한 증인과 증거들이 확보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3.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치하의 박해
'명상록의 저자'이며 스토아 철학의 대변자인 아우렐리우스는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인 경향을 나타내 보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아첨자들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를 참혹하게 박해하기 시작했다.

기독교인들이 채찍에 맞아 온 몸이 찢어져 유혈이 낭자했으며 속살이 드러나고 창자까지 밖으로 터져나왔다. 온갖 종류의 고문을 받은 뒤에 사나운 짐승의 밥으로 던져졌다.

박해의 강도가 점점 심해졌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갖은 고문과 박해속에서 자신들의 신앙을 지켰다. 이 박해로 인해 게르마니투스라는 독실한 청년이 순교했다.

지방 총독의 간곡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힘을 얻어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에 대한 본성적인 두려움을 극복하였다. 게르마니쿠스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사나운 짐승의 밥이 되어 마침내 이 불의하고 무법한 세대로부터 자유함을 얻었다.

박해는 시간이 흐르면서 강화되었고 마르쿠스 아우레릴우스 황제치하에 폴리갑이 서머나에서 순교하였다. 그의 순교의 기사는 다음과 같다.

 " 총독은 그에게 ' 맹세하시오. 그러면 당신풀어 주겠소. 그리스도를 비난하시오.'라고 재촉했다.

폴리갑은 이렇게 대답했다.

' 나는 86년동안 그분을 섬겨왔는데 그동안 그분은 한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이제까지 섬겨온 나의왕 그리스도를 모독할 수 있겠습니까? ..........

이윽고 화형을 위해 마련된 도구들이 그에게 정착되었다. 그들은 그를 큰 못으로 말뚝에 고정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는

'나를 이대로 두시오. 나에게 화형을 견뎌낼 힘을 주실 분께서는 당신들이 못을 박지 않아도 장작더미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견딜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하니님이시여! 당신께서 오늘 이 시간 나로 하여금 순교자의 반열에 , 그리고 그리스도의 잔에 참여하게 하시어 내 몸과 영혼이 성령의 썩지않는 축복속에서 영생의 부활을 얻기에 합당하다고 여기 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나는 신실하고 참되신 하나님이신 당신께서 예비하시고 계시하시고 이루신 풍성하고 가납될 만한 제물로서 당신이 보시는 앞에서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 모든 일을 인하여 당신의 사랑하는 독생자 영원한 대제사장을 통하여 당신을 찬양하고 감사드리며 영광을 돌리나이다. 성부 성자 성령께 이제부터 영원히 영광이 있을지어다. 아멘."

폴리갑에 이어 165년 대표적인 변증가 저스틴도 순교의 대열에 합류했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통치기간인 177년 심한 박해가 고울지방에서 일어았으며 이후 250년까지 박해가 간헐적으로 계속되었다. 그후 막시미누스 통치 3년후에 간헐적으로 진행된 박해이후 평화가 잠시 도래하였다. 박해가 중단된 기간은 복음전파를 위한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 3세기 50년동안 수천명의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고 공동체는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50년에 데시우스 황제가 들어서면서 3차박해가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계속

댓글 1개:

  1. 박해가 있어도 끝까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던 자들이 있던 반면, 박해를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자들 때문에 오늘날 교회에 불법이 가득하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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