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6일 화요일

여자의 남은 자손이 결국 승리 - 하나님의 교회,안상홍님,김주철 목사님,어머니 하나님



여자의 남은 자손이 결국 승리 - 하나님의 교회,안상홍님,김주철 목사님,어머니 하나님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망하기 마련입니다(호 4장 6절).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이런 사실을 아는 마귀는 세상 끝까지 어머니의 원수가 되어 이 진리를 훼방함으로써 택하신 백성이라도 삼키고자 할 것입니다.

요한의 계시 가운데, 용이 여자와 원수가 되어 여자의 남은 후손과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는 모습은 바로 이 시대에 옛 뱀인 마귀가 어머니와 어머니를 따르는 우리들을 해라고자 바다 모래와도 같이 많은,  자칭 그리스도인들을 동원하여 대적하고 있는 장면입니다(계 12장 17절).

계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숫자적으로는 열세이지만 우리가 이를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은 하나님께서 창세 때부터 이미 어머니의 승리를 예고하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귀는 꺼지지 않는 불못에서 세세토록 고난당하고, 여자의 남은 자손들은 ‘이기는 자’로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고 하늘 유업을 이어받아 세세토록 복락을 누리는 것이 성경의 정해진 결말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우리의 형상대로’ 더불어 역사하셨던 하나님, 바벨탑을 쌓는 인생들의 악함을 징치하실 때에도 ‘우리가 내려가서’라고 하시며 함께 역사하셨던 하나님,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셨던 하나님은 남성의 형상과 여성의 형상을 갖추신 엘로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기약이 이르러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세상 끝 날에 성령과 신부로 나타나셨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며, 우리가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자, 영적인 눈을 크게 떠보십시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의 자녀라면 예루살렘과 함께 기뻐하고, 또 함께 슬퍼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사 66장 10~14절). 또한 하나님의 통치와 인도를 받고 있는 우리임을 자각하시고, 성령과 신부로 오신 하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끝까지 따르는 하늘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 66:10~14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다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 너희가 젖을 빠는 것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열방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 원수에게 더하리라

-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 제24장 중에서 -

2012년 11월 5일 월요일

여자의 후손과 어머니 - 하나님의 교회, 어머니하나님(예루살렘 어머니), 안상홍님, 김주철 목사님




여자의 후손과 어머니 - 하나님의 교회, 어머니하나님(예루살렘 어머니), 안상홍님, 김주철 목사님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미혹한 뱀을  책망하시며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등장할 것을 말씀하셨고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과의 싸움에서 여자의 후손이 승리할 것을 미리 약속 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은 누구일까요?


(1) 여자의 후손

남자와 여자사이에 자식이 태어난다면 남자의 후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이란 남자 없이 여자 혼자 낳았다 하여 여자의 후손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예언하였습니다.(사 7:14) 그러므로 남자 없이 여자 혼자 낳은 자식하면 예수님으로 그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마 1:20-21]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여자의 후손이 승리하리라는 예언에 따라 예수님께서는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십자가로 승리하시고 하늘로 올리어가셨습니다.


[계 12: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승리하고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의 역사는 예수님으로 끝나는 역사가 아니라 마지막 시대에 구원 받을 우리들의 역사를 미리 보여주신 일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우리도 여자의 후손이 되어야 하늘로 올라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시대에도 남자 없이 자녀를 낳는 여자가 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또 다른 여자의 후손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 남편 없이 자녀를 낳는 한 여인이 또 등장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태어난 자녀들도 남자 없이 홀로된 여인을 통해 태어났으니 여자의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 또한 여자의 후손으로서 예수님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고 승리하여 하늘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 54:1]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도 요한이 본 계시속에 세상 끝에 여인의 남은 자손들과 용과의 대 쟁투가 있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여자의 남은 자손은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 속에 등장하는 잉태치 못한 홀로된 여인의 자녀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여자의 남은 자손들과 여자와는 어떤 관계에 있겠습니까? 어머니와 자녀관계입니다. 따라서 용과의 대 쟁투가 있기 전 홀로된 여인이 나타나 수많은 자녀를 낳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홀로된 여인을 통해 생명을 얻는 자들이 여자의 후손이 되며 이들이 용과의 대 쟁투에서 승리하고 하늘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3) 예루살렘 어머니

구원 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은 남자 없이 여자 홀로 낳은 여인의 남은 자손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용과의 대 쟁투가 있기 전 홀로된 여인이 등장해야만 됩니다. 사도 바울은 하늘에 예루살렘이신 어머니가 계시며 어머니를 홀로된 여인이라 하였고 많은 자녀를 낳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갈 4:26-27]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성경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하늘 예루살렘이신 어머니께서 마지막 날 홀로된 여인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계명과 믿음을 지키는 여인의 남은 자손을 낳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본 계시 가운데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 이 땅에 내려온다”라고 기록을 하였던 것입니다.  


[계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위 말씀은 하늘의 새 예루살렘 어머니께서 이 땅에 신부의 모습으로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어머니께서 이 땅에 오시지 않는다면 여인의 자손은 등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재림 그리스도이신 성령 안상홍님께서 새 언약의 유월절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를 일깨워 주시고 마지막 택한 백성 14만 4천은 어머니를 따라야 함을 알려주시고 하늘로 올리어 가셨습니다. 

14만 4천은 여자의 남은 자손으로서 마지막 용(마귀)과의 대 쟁투에서 승리하고 하늘로 올라 갈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따라서 여인의 남은 자손에 들지 않고는 누구도 하늘에 올라 갈 수 없으며 구원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안상홍님 하늘로 올리어 가시고 홀로 14만 4천을 이끌어 가시는 어머니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따르는 여자의 남은 자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012년 11월 3일 토요일

빚진 자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 하나님(예루살렘 어머니)안상홍님, 김주철 목사님

빚진 자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 하나님(예루살렘 어머니),안상홍님, 김주철 목사님




빚진 자
 
저희 어머니는 몸이 편찮으셔서 집에 누워 계실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의 식사 시중을 들고 심부름을 하고 집안일을 돕느라 친구들과 놀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힘들게만 하는 것 같아 야속했고 항상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 친구들이 몹시 부러웠습니다.

저는 늘 어머니를 창피하게 생각했습니다. 때로 친구들과 있다가 어머니를 마주쳐도 내 어머니라는 사실을 숨겼습니다. 어머니가 나에게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여기고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새 저는 어른이 되었고 몸이 아팠던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를 잘 돌봐드리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힘들어하던 어느 날, 이모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들었습니다.

삼십여 년 전, 어느 작은 동네에서 두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병원이 너무 멀어 산파를 불러 아기를 낳던 그때, 출산 과정에서 태아의 목이 탯줄에 감겨 산모와 태아 모두 위급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떻게든 살려보자며 택시를 불러 멀리 있는 시내 병원으로 산모와 아기를 보냈습니다. 의사는 산모에게 아기가 목에 탯줄이 감긴 시간이 너무 길어서 살 가망이 없다는 비참한 통보를 했습니다.

침대에 누워 있던 산모는 어린 핏덩어리를 죽일 수 없다며 출산의 고통도 잊은 채 하얀 보자기에 싸인 아기를 의사의 품에서 빼앗아 인공호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들은 산모의 행동을 엄마로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여기며 그저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이미 의사들은 아기가 죽었다고 판단한 상태였습니다. 연신 인공호흡을 하는 산모가 가여워 이제 그만 아기를 보내주자며 산모를 달래려던 의사가 갑자기 탄성을 질렀습니다.

“아기가 숨을 쉬어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병원에 있던 사람들은 사랑하는 아이를 지극한 모성애로 살린 산모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살아난 아기가 바로 저였습니다.

저는 빚이 많은 사람입니다. 제가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에게 빚진 자였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사랑을 주신 어머니를 저는 떳떳하게 불러본 적도 없습니다.

어머니에게 저는 죄인입니다. 한 번도 감사하지 않은 죄, 어머니를 창피하게 여겼던 죄, 한 번도 효도하지 못한 죄를 어찌 다 회개할 수 있을런지요. 당신의 생명이 다하기까지 어떠한 보상도 받지 않고 오로지 자녀를 위해 사셨던 어머니의 삶을 알고 나니 그 빚을 갚을 길이 막막합니다.

나를 위해 죽기까지 희생하신 어머니, 죽음도 막아설 수 없었던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을 깨달으며 감사함과 그리움에 하늘을 보며 큰 소리로 외쳐봅니다.
“어머니, 이제야 철든 딸을 용서해주세요. 나를 위해 한 평생을 사신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BY ELOHIST-

출처 : 멜기세덱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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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사랑은 이처럼 조건없이 바라는것 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다시한번 크나큰 깨달음 허락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자녀살리시고자 하시는 고귀하시고 위대하신 희생에 다시한번 깊은 감사와 영원한 영광과 찬양을 드립니다.

2012년 10월 31일 수요일

하나님은 몇등? - 하나님의 교회, 예루살렘 어머니, 어머니 하나님, 안상홍님, 김주철 목사님



이 못난 자녀들의 영혼과 육신의 안위만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쉼없이 일하시며 또 이땅에서 친히 함께 하시며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생으로 자녀들을 돌보시고 양육하여 주시는 예루살렘 어머니 하나님께 항상 감사와 영원한 영광과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몇등?

나에게 있어

일등은 하고 싶은 일, 이등은 해야 하는 일,
삼등은 하나님 만나는 일,

하고 싶은 일 다하고, 해야 하는 일도 다 마치고,
그 후에 여유가 있으면 하나님을 만나줍니다.

하나님은 삼등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도 하나님은 삼등입니다.
내 힘으로 한 번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도와 달라고 하고 그나마도 안 될 때 하나님을 부릅니다.

하나님은 삼등입니다.



거리에서도 삼등입니다.
내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내 자신,
그 다음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그 다음에서야 저 멀리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삼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나는 일등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부르기만 하면 도와주십니다.
내가 괴로워 할 때는 만사를 제쳐 놓고 달려오십니다.
아무도 내 곁에 없다 생각들 때는
홀로 내 곁에 오셔서 나를 위로해 주십니다.


나는 하나님께 언제나 일등입니다.


나도 하나님을 일등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사를 제쳐놓고 만나고,
작은 고비 때마다 손을 내미는 나도
하나님을 일등으로 모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일등이신 하나님을 나도 일등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하나님은 몇등이십니까?

이 글을 읽으신 분들에게
하나님의 성경말씀 마태복음 6:30~33절을 선물합니다.



 +  나에게 하나님은몇등인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는 삶이 되자...




하나님의 교회, 예루살렘 어머니, 어머니 하나님, 안상홍님, 김주철 목사님

어머니 하나님(예루살렘 어머니)의 훼방글에 대한 반론문7 -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님, 김주철 목사님




어머니 하나님(예루살렘 어머니)의 훼방글에 대한 반론문7 -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님, 김주철 목사님

또 주장하기를

에베소서 2장 20~22절을 보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위의 내용 중  “너희는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간다”고 했는데 어떻게 안상홍측의 하늘어머니께서 예루살렘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정말 엉터리이다. 라고 훼방하였는데 대적자는 지금 자기가 말하고 있는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주안에서 성전이 되어간다고 했는데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당신께서 예루살렘성전이라고 하셨으니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성전이 되시면 엉터리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이젠 자기스스로 믿고 있다고 입술로 시인하는 예수님마저 부인하고 말았으니 대적자에 대한 성경의 예언을 살펴보아서 대적자의 정체를 살펴보자.

딛1:16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진리의 백성들은 이런 자들의 엉터리말에 현혹되어서는 않되겠다.

특히 갈라디아 4:26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우리어머니라고 하셨고
위에 있는 예루살렘에 대해서 계시록21:22절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셨으므로 어머니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대적자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보고자 시도하고 있는데 자세한 내용을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자.

창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우리라는 복수의 하나님께서 자기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창조된 사람을 통해서 보면 남자와 여자가 탄생되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나타난 형상을 보니 남자와 여자가 탄생되었다면 하나님의 형상에는 어떤 형상 어떤 형상이 있다는 것인가?

한글만 알아듣는다 할지라도 이 내용은 알아들을 수가 있을 것이다.

계속

2012년 10월 29일 월요일

어머니 하나님(예루살렘 어머니)의 훼방글에 대한 반론문6.-하나님의 교회,안상홍님,김주철 목사님


어머니 하나님(예루살렘 어머니)의 훼방글에 대한 반론문6.-하나님의 교회,안상홍님,김주철 목사님


대적자는 주장하기를

갈 4:22~26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장22~26절의 내용을 일부분만 해석을 하여 정작 예루살렘성전으로 표상하고 있는 어머니 하나님에 대해서 왜곡하고자 하고 있다.

물론 두언약을 통해서 지상의 예루살렘과 하늘예루살렘도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하늘예루살렘이 단지 영적성전만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면 이는 코끼리의 다리를 붙잡고 코끼리는 기둥 같다고 하는 소경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성전이라고 하셨고 (요2:21) 계시록21장22절에서도 하늘예루살렘성전을 가리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셨으니 대적자들의 주장이 진리에 훼방하기에 급급한 아주 조잡한 내용임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계속

어머니 하나님(예루살렘 어머니)의 훼방글에 대한 반론문5.-하나님의교회,안상홍님,김주철 목사님




어머니 하나님(예루살렘 어머니)의 훼방글에 대한 반론문5.-하나님의교회,안상홍님,김주철 목사님

대적자들은 어린양의 아내 곧 신부(계21:9)에 대해서 에베소서 5장의 내용으로 마치 교회나 성도만을 표상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성경은 비유적으로 이중적인 의미 포함할 때도 많이 있다.

만일 이중적으로 표상된 내용을 오로지 한가지에만 적용을 하게 된다면 여러 가지 이상한 내용이 발견될 것이다.

예를 들면 아담은 창세기를 통해서 인류의 시조로서 최초 범죄자로 표현이 되어 있기도 하지만 오실자를 표상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롬5:12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만일 이 내용에 대해서 한가지만을 나타내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최초범죄자라고만 되어야 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고전15: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마지막 아담에 대해서 설명이 힘들어지게 될 것이다.

아담은 최초범죄자로 표현되어 있지만 오실 그리스도를 표상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범죄자로만 본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범죄자여야 한다는 주장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계시록22장의 성령과 신부께서 생명수를 주신다고 하셨고 생명수를 주시는 분은


계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 ...


알파와 오메가 이신 하나님께서 생명수를 주신다고 하셨으므로 성도가 알파와 오메가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대적자는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계속

2012년 10월 26일 금요일

어머니 하나님(예루살렘 어머니)의 훼방글에 대한 반론문4.-하나님의 교회, 안상홍님, 김주철 목사님




어머니 하나님(예루살렘 어머니)의 훼방글에 대한 반론문4.-하나님의 교회, 안상홍님, 김주철 목사님

진리에 대적자는

[계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되어있다. 새예루살렘이 바로 신부라는 것이 아니라 새예루살렘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한 것이다. 즉 새예루살렘은 신부가 아니라 신부와 같은, 또는 신부로 비유된 것이다.]

라고 주장을 하였는데 같은 요한계시록 21장의 내용을 통해서 얼마나 대적자가 파렴치한 거짓말쟁인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계21: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라고 하셨으니 대적자는 위에서 주장하기를 "새예루살렘은 신부가 아니라 신부와 같은 또는 신부로 비유된 것이다," 라고 했는데 성경말씀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보여주겠다 하시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였으니”

신부에 대해서 하늘예루살렘이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는데 대적자는 하늘예루살렘이 신부가 아니라고 하였으니 대적자의 정체가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자는 누구일까?

잘 생각해보면 누구인지 깨달을 수가 있을 것이다.


계속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 선교협회

어머니 하나님(예루살렘 어머니)의 훼방방글에 대한 반론문3.-하나님의 교회, 안상홍님, 김주철 목사님




어머니 하나님(예루살렘 어머니)의 훼방방글에 대한 반론문3.-하나님의 교회, 안상홍님, 김주철 목사님

초림당시 훼방자들은 오로지 그리스도를 육신적으로만 바라보게 만들어 하나님의 거룩하신 신성에 흠집을 만들어 내어 믿지 못하게 혈안이 되어 버렸다.

그러면 초림당시에 상황을 통해서 이 시대에 다시금 되풀이 되고 있는 현실을 살펴봄으로 거짓선지자들의 악랄하고 비열한 술책에 넘어가지 않는 우리가 되어보자.

하늘 어머니 하나님에 (예루살렘 어머니) 대해서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이 아니라 장씨 집안의 딸로 태어난 단순한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바로 이러한 점이 초림당시에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났다하여 비방했던 유대인들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마13: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어떤가 너무나 똑같지 않은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육신을 쓰고 이 땅에 오셔서 그리스도로서의 삶을 사시기전에는 육신적인 삶을 사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예수님께선 그리스도로서의 삶을 사시기 이전에 성장과정이 있었을 터이고 그 과정속에서 갓난애기때는 이불에 오줌도 싸셨을 것이고 유년시절엔 철없는 행동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같이 자라온 친속들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이라고 하니 믿지 못하고 미쳤다고 배척을 하게 된것이다. 이는 육신적인 모습만을 생각하고 육신의 안목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초림 예수님께서도 구원자로서의 삶을 살기 이전에는 목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계시고 육신적인 삶을 사시다가 때가 되어 침례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은 후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대적자들의 궤변대로 본다면 예수님의 동생들은 하나님의 동생들이 되어야 하며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는 하나님을 낳은 어머니가 되어야하며 또한  모든 인류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며 하나님이 보실 땐 인간은 모두가 자녀이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에게서 태어나셨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여인의 모습으로  자녀를 잉태하는 인간적인 삶을 사셨다는 것이 무엇이 이상하단 말인가?

대적자에게 묻고 싶다.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을 아내로 삼고 자식을 낳았다고 하였으니 대적자들은 그 자식에 대해서 뭐라고 할 것인가? 하나님의 손자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 선교협회

계속

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어머니 하나님의 훼방글에 대한 반론문2.-하나님의 교회, 안상홍님




어머니 하나님의 훼방글에 대한 반론문2.-하나님의 교회, 안상홍님

계 22:17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진리에 대해 대적하는 자들은 초림 때부터 늘 그렇게 해왔듯이 성경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근거 없다는 증거조차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말로만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령과 신부시라면 “생명수”를 주셔야 한다.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성령과 신부이신 증거가 바로 “생명수”인 것이다.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된 말씀이 있음에도 성경적 근거가 없다고 우긴다.

그러면 계22:17절의 이 내용은 성경말씀이 아니고 무엇인가?

성경에 분명하게 있음에도 없다고 우기며 믿지 못하게 훼방하는 자들이 누구일까?

우리는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초림당시에도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구원자이심을 성경의 예언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음에도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려고 조차도 하지 않고 무조건 대적하는 유대인들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가 있다.

유대인들도 구약성경은 보고 있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는 “예수”라는 실명은 없었다는 것이다.

오실 그리스도의 이름은 이사야 7장14절의 ‘임마누엘’ 이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성경어디에 구원자가 여호와하나님이 아닌 “예수”라고 되어 있느냐?

성경 어디에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되어 있느냐?

왜 성경에 없는 예수님을 믿는 것인가? 정말 한심할 뿐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때 당시 등장한 거짓그리스도인 갈릴리 유다나 드다와 함께 동류로 여기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 생명수를 주시는 성령(아버지 하나님)과 신부(어머니 하나님)를 훼방하고 대적하는 이들은 한영혼이라도 죽이려고 혈안이 된 정신병적인 그야말로 광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계속

2012년 10월 21일 일요일

어머니 하나님의 훼방글에 대한 반론문-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





어머니 하나님의 훼방글에 대한 반론문-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

대적자들은 어머니하나님에 대해서 여교주라고 말하여서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하고자 표현조차도 비하시키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자들이 초림시에 있었다면 예수님에 대해서 '남자 교주' 라고 말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적자들이 말하고 있는 성령과 신부에 대한 말씀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데 그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겠다.



초림당시에도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내려왔다라고 하니

요6:41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라고 비웃고 조롱했던 이들이 있었다.

대적자들 스스로 "안증회측의 교리를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오는 것이지만' 이라고 하며 초림당시의 모습을 되풀이 하고 있다.

갈라디아서 4장26절에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예루살렘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대적자들은 예루살렘이라고 하니까 단지 성전만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러한 착오는 이미 초림 때부터 이미 있어왔던 내용인 것이다.


요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전이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던 유대인들은 46년동안에 지어졌던 성전을 3일만에 일으킨다고 하니 깨닫지 못하고 더욱 조롱하였던 것이다.
유대인들이 저질렀던 잘못을 이 시대에 다시 되풀이 하고 있으니 정말 한심할 노릇이다.


예루살렘성전에 대해서도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성전이시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계21:22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갈4: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어머니라.

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예루살렘성전은 하나님을 가리키며 그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어머니라고 말씀하셨으니 당연히 어머니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하늘예루살렘에 대해서 계시록21장에서는 어린양의 아내 곧 신부라고 말씀하셨으며

계시록22장 17절에서는 성령과 신부께서 생명수를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생명수”를 통해서 성령이신 하늘아버지와 신부이신 하늘어머니에 대해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해볼 수가 있음에도 훼방하고 대적하는 자들이 있으니 이들의 정체가 무엇일까?

바로 생명수를 받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자들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계속



2012년 10월 17일 수요일

이중적인 예언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 안상홍님, 김주철 총회장님




이중적인 예언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 안상홍님, 김주철 총회장님

오늘날 교회들은 어머니 하나님을 꼭 부인해야만 할 입장에 서 있습니다.

왜??

만일 계시록 22장 17절의 신부를 어머니로 인정해 버리면 자신들은 구원받지 못하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확실히 증거되는 하늘 어머니에 대한 문제로 인해 궁지에 몰린 거짓 목자들은 "어머니 하나님" 존재를 부인하기 위하여 사활을 건 모습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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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선지자들은 성경의 뜻을 단편적으로만 보이면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시키려 합니다.
어머니를 부인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주장은 “성령의 신부는 성도를 비유한다”입니다.


성경은 한 가지 내용에 대하여 복수의 뜻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중적인 예언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를 ‘목자’로 성도들을 ‘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도 비유합니다.
그러면 성도도 양이고 예수님도 양이시니 둘 중에 하나는 틀린 것입니까? 아니죠.
목자로 표현한 것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양으로 표현한 것은,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양”에 대한 표현이 ‘예수님과 성도’로 이중적인 예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물도 성경에서는 ‘실제 물(침례)’과 ‘인류세상(계17:15)’ 그리고 ‘생명수(요4:13)'를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만일 한 부분만을 고집하여 물은 “무조건 육체를 가진 사람이다”라고 한다면,
침례 받을 때에 “사람에게 사람을 붓는다”는 말이 되고 맙니다.
이렇게 단편적인 해석을 고집하게 되면 웃지 못할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물”에 대한 표현이 이중적인 예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새는 마귀(막4:3, 15)로 비유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독수리가 하나님(신32:10~11)으로 예언된 부분도 있습니다.
새에 대한 부분에서도 무조건 마귀라고 단편적인 해석을 하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독수리는 새의 일종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마귀의 종류 가운데 하나라는 말이 됩니다.
이상한 해석이 나와 버립니다.
새에 대한 말씀도 이중적인 예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중적인 예언들이 많기에 성경 한 부분만 고집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게 됩니다.
성경의 예언을 상고할 때 이 점을 주의해서 살펴야 함에도 거짓 선지자들은 하늘 어머니에 대한 진리를 훼방하고자 이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1.성령의 신부에 대한 내용도 이중적인 예언이다.


먼저 신부가 성도로 표현되어 있는 부분도 살펴보겠습니다.

고후11:1~3 “내가 너희를(성도들을)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하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아담은 그리스도이며 아내인 하와는 성도로 예언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성령의 신부는 무조건 어머니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이 구절에서는 아내가 ‘성도’로 해석되어야 올바른 예언의 말씀이 됩니다.


[천사세계에서 온 손님들 제 13장 ‘처음 아담과 마지막 아담’중에서]

아담은 후에 오실 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말항T고 하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을 표상하였다. 기록한바 ‘고후11:1~3 내가 너희를(성도들을)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하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하였으니, 아담과 하와는 예수님과 성도들 간의 오묘한 진리를 연구할 수 있도록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안상홍님께서는 분명 진리책자에 이중적인 예언에 대한 설명을 남기셔서, 신부에 대한 표현 중에 성도에 관한 부분도 있음을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안상홍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신부에 대한 표현을 한 부분만 고집하여 단편적인 해석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짓 선지자는 이 부분만을 강조하여서 신부는 무조건 성도라고 거짓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엡5:22~25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에베소서에서는 남편은 그리스도로 아내는 “교회”로 표현되어야 올바른 해석이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이 부분이 어머니만을 나타내고 있다는 단편적인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분명 이 표현은 “교회”에 관한 표현이 맞습니다.

하지만 거짓선지자는 이 부분만을 단편적으로 고집하여 신부는 무조건 교회라고 하고 있습니다.


고후11장과 엡5장에서는 신부가 ‘성도, 교회’로 표현되어야 옳은 해석이 되는 것처럼,
다른 성경구절에서는 “그리스도로써의 하늘 어머니”로 표현되어야 옳은 예언이 있습니다.

신부에 대한 말씀도 이중적인 예언임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2. 신부를 성도라고 했을 때 일어나는 모순들에 대하여 살펴보자.


계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단편적인 해석으로 신부가 성도라고 한다면,

성도가 생명수를 줄 수 있습니까? 죄인인 우리는 절대 줄 수 없습니다.

또한 성도가 생명수를 주는 존재라면, 생명수를 받는 존재는 누구이겠습니까?

생명수를 주시는 존재는 그리스도뿐이지 결코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요한 계시록 22장에서 예언된 신부는 분명 어린양의 아내이신 하늘 어머니이십니다.

이중적인 예언을 단편적으로만 바라보는 거짓목자들의 훼방의 말을 간파해야 합니다.


계12:17  “~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여자의 남은 자손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특징을 보아서 분명히 성도입니다.

그러면 “여자”를 단편적인 거짓 주장으로 성도로 해석한다면?

‘성도의 남은자손(성도)’가 되고 맙니다. 이상한 말씀이 되고 맙니다.

요한 계시록 12장에 예언된 “여자”도 분명히 구원자로 임하실 하늘 어머니에 대한 예언입니다.



막2:19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신랑은 예수님이십니다. 금식할 손님들은 누구를 나타내고 있습니까? 제자(성도)입니다.

성도들은 혼인 잔치에 신부가 아닌 손님들입니다.

단편적인 해석으로 거짓 주장한다면

‘신부도 성도’이고 ‘혼인 집 손님도 성도’라는 이상한 해석이 나오고 맙니다.

마가복음 2장에 신부는 분명 구원자이신 하늘 어머니에 관한 예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22:1~14 “천국은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 혼인잔치에 손(손님)이 가득”

예수님의 이 비유 속에 성도들은 어떤 역할일까요? 신부일까요? 하객일까요?

문맥 전체를 읽어보시면 성도는 신부의 역할이 아니라, 청함을 입은 하객으로 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결론]

이처럼 성경을 단편적으로 해석하는 오늘날 거짓 목자들은 성경에 예언된 “신부”를 무조건 “성도” “교회”라고 단편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거짓 주장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어린양의 아내인 어머니를 영접하지 못하여 하늘 유업을 받지 못하고 바깥 어두운데 쫓겨날 현실이 눈 앞에 다가왔음을 알기에 두려움에 떠는 몸부림입니다.


성경의 예언을 단편적 해석하는 어이없는 거짓 선지자의 말에 미혹되지 마시길 바랍니다.

2012년 9월 26일 수요일

기존 기독교인들은 천국에 못들어간다?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 안상홍님



기존 기독교인들은 천국에 못들어간다?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 안상홍님

아시는 분은 아시는 내용이죠.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가 어느날 꿈을 꾸었습니다.
웨슬리가 지옥문에 도착하여 어떤 사람이 지옥에 들어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천주교인도 있습니까?"
그런데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공회인도 있습니까?"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장로교인도 있습니까?"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웨슬리는 마지막으로 자기 교파를 의식하면서 물었습니다.
"웨슬리 교회 사람도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많이 있습니다."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웨슬리는 예기치 못한 말을 듣고 크게 놀랐습니다.

그래서 낙심하여 천국문에 가서 물어봐야 겠다고 생각하고
천국문 앞에 이르러 물었습니다.

"이곳에 웨슬리 교인들도 있습니까?" 그랬더니 안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웨슬리는 더욱 놀라 낙심하여 묻기를

"그러면 장로교인은 없습니까?" 안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주교인은 있습니까?" 한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천국에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있는 겁니까?"

안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안에는 그리스도인 밖에는 들어오지 못합니다."
하는 음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깜짝 놀라 잠을 깼습니다.

무슨 말 입니까?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장로교인? 아닙니다.
성결교인? 아닙니다. 순복음교인? 아닙니다. 천주교인? 아닙니다.
교파로 천국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다윗이 가지고 있는 천국의 열쇠?   새언약~?



2012년 9월 19일 수요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주장에대한 반론-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안상홍님


하나님의교회에서는 유월절에 참예하라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유월절을 지킴으로 믿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안상홍님께서도 어머니하나님께서도 성경대로 유월절을 지키시는 본을 친히 보여주심으로 믿음엔 행함이 수반되어야 함을 알려주셨습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주장에대한 반론-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안상홍님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을 지키라고 한적도 없고 또한 절기를 지켜서 구원받는것이 아니고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라고 하는 거짓주장에 대해서 반론

마26:17『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웠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이제 님께서는 마태복음26장의 구절은 지워야 하겠군요

님은 없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성경에는 분명히 기록되어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노릇입니다.

성경대로 행한다면 절기도 지켜야 하고 믿음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한쪽을 강조해서 다른 한쪽을 약화시키므로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코자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절기지키는 것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며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행위가 바로 절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부분만 강조해서는 안되겠지요

계14:12『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이처럼 계명도 지키고 믿음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만가지고 이야기한다면

약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라고 하였으니 귀신도 구원받았다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히11: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

이스라엘백성들이 여호와하나님을 믿기만 했지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겠습니까!!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뿌리는 예를 정하셨으니 당연히 믿음의 행위로 유월절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요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예수님께서 지키라고 명하신 새언약유월절을 지키십시오

약1:22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말라』

믿는다고 하여 자기자신을 속이는 분이 되시면 안되겠지요

약1: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약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이제 예수님께서 지키라고 명하신 새언약유월절을 지키셔서

절기도 지키시고 믿음도 가지시는 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012년 9월 16일 일요일

'달력의 요일의 역사' 5,000년전엔 1년이 354일? - 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안상홍님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께서 재건하여 주신 초대 교회인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성경대로 일곱째날(토요일) 안식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날 요일의 명칭이 쓰여지게 된 유래를 살펴봄으로 해서 첫째날은 일요일이며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께서 안식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복주신 날이 일곱째날 토요일임을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달력의 요일의 역사' 5,000년전엔 1년이 354일? - 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안상홍님

로마황제 요일명 321년 도입, 태양력은 이집트인 첫 사용

예전에는 이맘 때만 되면 둘둘 만 커다란 달력을 옆구리에 끼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흔했다. 하지만 개성을 중시하는 요즘은 달력도 주문 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1년 내내 봐야 하는데 기업에서 홍보용으로 뿌리는 달력을 걸어놓기는 싫어서다. 그래서 인터넷에서는 맞춤 달력을 서비스하는 업체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렇다면 달력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을까?


요일은 로마시대부터

문헌상으로 한 주를 7일로 나눈 것은 성서가 최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쉬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 주를 구성하는 7일에 대해 ‘요일’이라는 말 대신에 ‘첫째 날, 둘째 날,…, 일곱째 날’ 등으로 불렀고, 10계명에 따라 안식일인 일곱째 날을 신성시해 어떤 일도 하지 않고 무조건 쉬었다.

요일에 지금과 같은 명칭이 붙은 것은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AD 321년 매주 첫째 날을 휴일로 정하는 법령을 발표하면서. 요일의 명칭은 고대인들이 관찰할 수 있었던 태양과 달을 포함한 일곱 행성에서 따왔다.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눈 것은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점성술에서 유래했다. 일곱 행성이 돌아가면서 매 시간을 지배하며, 하루의 첫째 시를 지배하는 행성이 그 날을 지배한다고 생각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태양을 신으로 섬겨 태양의 날인 일요일을 휴일로 정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의 달력에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쓰고 있던 일주일을 도입했지만 요일의 이름은 바빌로니아의 점성술에 근간을 두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AD 321년 3월7일 첫째 날을 태양의 날로 선포하고 이 날을 예배일이자 공휴일로 정한 뒤 둘째 날은 월요일, 셋째 날은 화요일, 넷째날은 수요일, 다섯째날은 목요일, 여섯째날은 금요일, 일곱째 날은 토요일로 명명하는 칙령을 내렸다.

첫째 날(일요일)을 ‘태양의 날’이자 공휴일로 정한 것은 당시 로마인의 대다수를 차지한 미트라(태양신) 교도들을 배려하기 위함이었다. 일곱째 날, 즉 토요일을 예배일로 지켜오던 유대인들과 일부 기독교인들은 이에 반대했지만 교회 지도자와 미트라 교도 등 대다수 로마인은 칙령에 지지해 일요일 휴일이 서서히 정착돼 갔다.


태음력이 달력의 효시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달이 차고 기우는 주기에 따라 29일 또는 30일을 한 달로 정하고 12달을 1년으로 하는 태음력을 사용했다. 태음력에 따르면 1년이 354일이어서 조금씩 오차가 날 수 밖에 없어 때때로 윤달을 넣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고대 수메르인과 바빌로니아인뿐만 아니라 유대인, 그리스인, 중국인 등 세계의 많은 민족들이 이러한 태음태양력을 수천년 동안 사용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쓰는 음력도 정확히 말하면 태음태양력.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 공전주기와 흡사하게 1년을 365일로 정한 태양력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이집트인들이다. 그들은 나일강의 수위에 초점을 맞추어 1년을 12달, 한 달을 30일로 정하고 여기에 다시 5일을 더했으며 1년을 주기로 정확히 반복되는 나일강의 범람을 관찰해 달력을 만들었다. 이집트 천문학자들은 4년에 한 번씩 윤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신성한 달력’을 고수하는 사제때문에 해마다 6시간 가량의 오차가 나는 것을 방관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같이 착오가 나는 달력을 바꾸는 개혁은 로마 율리우스 시저 황제에 의해 이루어졌다. BC 46년에 만들어진 ‘율리우스력’에서 1년을 처음으로 현재처럼 365일로 정했으며 4년마다 하루를 더한 윤년을 만들었다. 비로소 과학적인 달력이 탄생한 것이다. 물론 율리우스력도 완벽한 달력은 아니었다. 4년마다 윤년을 정할 경우 1년에 실제보다 674초(0.0078일) 정도 차이가 난다. 달력을 만들 당시에는 무시할 정도로 작은 오차였지만 16세기에 이르러서는 누적 오차가 10일이나 돼, 밤낮의 길이가 같은 춘분이 3월21일이 아닌 3월11일이 돼 버렸다.

마침내 로마교회가 달력 개혁에 나섰다. 1582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만들어 현재까지 사용 중인 그레고리력이 그것이다. 그레고리력은 율리우스력의 문제점을 보완해 100으로 나누어지지 않으면서 4로 나누어지는 해(96회)와 400으로 나누어지는 해 1회를 합해 400년 동안 97회의 윤년을 두었다. 그리고 누적오차를 바로잡기 위해 1582년 10월4일 다음날이 10월15일이 되도록 했다.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그레고리력을 만들었지?200년 동안 서유럽 개신교 지역과 동유럽의 그리스정교 지역에서는 계속 율리우스력 사용을 고집했다. 그러다가 서유럽지역은 18세기 말, 동유럽의 그리스정교 국가는 20세기에 이르러 그레고리역을 채택하면서 달력의 천하통일이 이루어졌다.

<도움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서호성 책임연구원>


*원어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할때 번역자들은 그 단어를 표준 국어사전에 입각하여 번역하기에 성경의 단어와 국어사전에 단어는 그 의미하는바가 동일함을 알려드립니다.

2012년 9월 13일 목요일

니케아 회의와 유월절 논쟁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 안상홍님


안상홍님께서 회복해주시기까지 초대교회 새 언약 유월절이 패지되게 된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유일하게 새 언약 유월절을 성경대로 지키고 있는 하나님의 교회가 참 진리 교회임을 깨달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니케아 회의와 유월절 논쟁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 안상홍님

교회사 및 세계사에 있어서 하나의 큰 획을 그은 니케아 회의(AD321년)는 당시로서는 처음 있는 세계적 회의였다. 유월절을 없애고 부활절을 지키자고 하는 것이 주된 의제였는데 이들이 말하는 부활절 즉 이스터(Easter)는, 북유럽에서 섬기던 봄의 여신 이스터의 축제일과 기독교의 부활절을 혼합한 절기였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활절(Resurrection Day)은 무교절 후 첫 안식일 다음날(일요일)이며,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최후의 만찬을 행하시고 다음날인 무교절에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으며 안식 후 첫날 부활하셨다.

레위기 23장에 유월절과 무교절에 대한 설명이 있고, 이러서 초실절(신약의 부활절)에 대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초실절(初實節)은 무교절 지나고 안식일 다음날(일요일)에 첫 이삭(열매) 한 단을 베어다가 제사장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절기이다. 하나님께 이 초실절 제물을 드리기까지는 햇곡식을 먹지 못하였고, 초실절 제물을 드린 후에야 햇곡식을 먹을 수 있었다.

구약의 모든 절기가 신약 시대에 이르러 예수님의 행적으로 성취된바,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성만찬을 하신 후 다음날인 무교절(1월 15일)에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시고 영혼이 떠나셨다. 그리고 안식일 다음날(일요일) 부활하셨으니 이는 구약의 초실절을 이루신 것이다(마 28:1, 막 16:1 눅 24:1, 요 20:1).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부활하시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으니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예수님 이전에 죽었던 성도들이 따라서 부활 받게 된 것이다(마 27:50, 고전 15:20 참조).

그러므로 신약의 부활절은 구약 초실절의 실상이었고 그 날짜는 유월절과 무교절 후에 오는 첫 안식일 다음날(일요일)이었다.

초대 교회는 그리스도의 유언에 따라 1월 14일 저녁에 유월절을 지키고, 다음날인 15일에는 무교절을 지켜 금식하고, 또 무교절 후 안식 후 첫날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을 지켰다(행 20:6∼7절 참조).

그런데 일찍부터 다신교 사상을 받아들인 로마교회는 당시 부활절과 비슷한 시기에 북유럽에서 지키던 봄의 여신 이스터 축제일을 부활절과 접목시키며 유월절을 반대하기에 이르렀다.

현재도 부활절에 계란에 색칠을 하거나 계란을 먹는데 이도 역시 봄의 여신 이스터를 축하하는 행사이다. 부활절 날짜를 정하는 기준이 되는 유월절, 무교절을 지키지 않음으로 인해 그들은 부활절 날짜를 정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논리를 전개하여 부활절 날짜를 정하였으니 곧 ‘춘분 후 만월 다음의 첫 일요일’이었으며, 그 일요일의 3일 전인 금요일부터 부활절까지 금식을 한 후 이 날(일요일)에 성찬식을 하였다.

이러다 보니 동·서방 교회 사이에 틈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에서 유월절과 금식하는 무교절까지 지키고 난 후 로마 지역으로 여행을 갔을 때, 이제서야 금식하며 성찬식 하는 장면을 보며 매우 놀라워하게 되었다.

로마교회에서는 2세기 중엽부터 유월절을 지키지 않고 부활절을 지키는 관습이 시작되었다. 155년경 서머나의 감독 ‘폴리갑’이 로마교회 감독 ‘아니케터스’와 유월절에 대한 문제로 토론하였다.

폴리갑은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인 요한, 그리고 여러 사도들과 함께 매년 유월절을 지켜왔노라고 하면서 유월절이 예수님 때로부터 내려온 전승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 모임에서 양편은 서로를 설득할 수 없었다.

이 폴리갑은 사도시대 때부터 신앙을 가졌던 사람으로 장수하였다. 이 때는 이미 고령이었고 얼마 후 순교당하였다.

197년 경에는 로마교회 감독 빅터가 유월절을 지키지 말고 부활절을 지키자고 주장하는 ‘도미닉의 규칙’(Dominical Rule: 주의 규칙)을 따르도록 여러 교회에 압력을 가했다. 서방 교회들은 빅터가 주장하는 도미닉의 규칙을 따르기로 하였지만 일찍이 그리스도 교회의 초기 기반이었던 아시아의 교회들은 크게 반발하였다.

에베소의 감독 ‘폴리크라테스’는 빅터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은 가문에서 여덟 번째 감독직을 수행하는 사람이며, 사도 요한과 사도 빌립 등 여러 사도들로부터 받은 권한을 행사하고 있고, 적어도 어느 것이 바른 규칙인지를 알고 있다며 유월절을 지켜야 함을 강한 논조로 설명하였다.

또한 팔레스틴과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 나르시수스, 가이사랴 교회의 감독 데오필루스, 두로 교회의 감독 카시우스, 클라루스 및 아시아의 여러 감독들은 폴리크라테스의 편지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이 서신의 사본들을 모든 교회에 보내어 쉽사리 길을 벗어나는 심령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도록 힘쓰십시오. 그러나 우리는 알렉산드리아에서도 우리와 동일한 방법으로 유월절을 지키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서신들을 보내었고 또 그들도 우리에게 서신을 보내어 모두가 같은 시기에 한 마음으로 거룩한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p298, 은성)


사단은 이와 같이 생명의 법인 유월절을 파괴하기 위해 끊임없는 공격을 퍼부었다. 그 불법자는 결국 로마 황제의 힘을 이용하여 생명의 진리를 없애버렸으니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주재한 니케아 회의를 통해서였다.

주후 325년 5∼6월 니케아 지방에서 열린 이 종교회의는 콘스탄틴 황제가 의장이었다. 이 회의에서 유월절을 폐지시키고 부활절을 지키기로 결정하였으며 부활절 날짜는 그들이 예전부터 주장해 오던 대로 춘분 후 만월 다음의 첫 일요일로 정했다. 유월절과 무교절을 폐지시켜 버렸기 때문에 성경에 정해진 부활절을 지킬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니케아 회의에서는 당시, 예수님은 신이 아니라 피조물이라고 주장하던 아리우스를 추방하는 문제, 그리고 교회의 조직을 정비하는 내용 등을 안건으로 상정하여 처리하고 폐회하였다.

이리하여 2세기 중엽부터 시작되었던 유월절 논쟁은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라”고 다니엘서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성취시키고서, 4세기에 와서야 일단락되었다.

니케아 회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콘스탄틴 황제의 개입으로 인해 로마교회는 권한이 강화되었고 황제는 교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어 서로가 추구하던 바를 이룬 것이다.

이제 로마 황제의 권세를 등에 업은 로마교회의 독주를 막을 자가 이 땅에는 없었다. 모든 교회들은 로마교회의 권력에 복종하지 않으면 이단이 되어 박해를 당해야 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성도들은 사막으로, 산중으로, 동굴 속에 숨어서 유월절을 지켜야 했다. <교회사 초대편>(283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콘스탄틴 대왕의 힘으로 교회에 평화가 찾아온 후로 교회의 수준이 갑자기 저하된 것을 한탄하여 광야의 금욕 생활에 나간 사람들이 허다하였다”

사단은 니케아 회의를 통해 일단 승리하였으니 성경에 기록된 바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단 7:21) 하신 말씀을 이룬 것이었다.

그러나 마귀와 그의 세력들은 두려워해야 할지니, 기록된 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을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단 7:22) 하신 말씀도 있기 때문이다.

마귀에 의해 빼앗겼던 생명의 진리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시온에 오심으로 회복되었으며 때와 법을 되찾은 성도들은 그 진리로 인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인 유월절이 폐지되고 이방 신의 축제일이던 이스터와 그리스도의 부활절을 혼합한 새로운 부활절(춘분 후 만월 다음의 첫 일요일)을 정했으므로 그들은 이 논쟁을 ‘부활절 논쟁’이라 부르며 과거 동방교회에서 마치 부활절을 1월 14일에 지켰던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은 어디까지는 그들의 관점일 뿐이다. 진리책자 ‘하나님의 비밀과 생명수의 샘’에는 이 내용을 ‘유월절에 대한 쟁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본란의 주제를 ‘니케아 회의와 유월절 논쟁’이라고 정하게 된 것이다.

현재 세상에 남아있는 교회사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진리교회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진리를 변개시킨 불법자들이 그들의 관점에서 기록했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을 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교회사를 읽을 때에는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살펴야 할 것이다.

어그러지지 않고 그대로 기록된 교회사로서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는 것은 성경뿐이다. 진리는 절대적으로 성경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가 지키는 유월절과 무교절, 부활절 … 등 모든 진리는 예수님과 사도들에 의해 기록된 온전한 교회사인 성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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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전 세계에서 초대교회 예수님께서 새워주신 새 언약 유월절을 성경의 가르침대로 성력 1월 14일 저녁에 지키는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유일합니다.



2012년 9월 11일 화요일

그리스도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 안상홍님



그리스도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 안상홍님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야' 에 대한 헬라어 호칭으로 '기름부음 받은 자' 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기름부음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성별(聖別)하신 자 - 선지자, 제사장, 왕 - 임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적으로 확인시키는 의식이기도 했고, 하나님께서 이들을 임명하시는 임명식이기도, 취임식이기도 했는데 기름부음에 사용했던 기름은 주로 감람유(올리브 기름)였습니다.

선지자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였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였으며, 자신을 대신할 선지자로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왕상 19:15~16)

선지자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이스라엘 왕을 세울 때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으며(삼상 10:1) 다윗에게도 기름을 부어 장차 이스라엘을 이끌 지도자로 예비하였습니다(삼상 16:12~13).

사울이 죽고 난 후 다윗이 왕위에 오를 때에도 기름부음을 받았고(삼하 5장 3절), 솔로몬도 왕이 될 때에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왕상 1장 39절).

이처럼 특정한 목적을 위해 임명하는 자들에게 기름을 부었는데 그들의 활동은 정해진 기간 동안만 기름부음 받은 자(메시야)로서의 활동이 이루어졌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메시야 사상’은 제사장, 선지자, 왕으로서의 메시야가 아니라 권세와 영광을 가지시고 모든 민족을 통치하실, 그리고 유다 민족을 열방 위에 뛰어나게 해 주실 메시야였습니다.

선지자 다니엘은 ‘기름부음 받은 자(메시야) 곧 왕’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였는데(단 9장 25절) 그 메시야가 곧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이 기름부음 받은 자(그리스도)이심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도 친히 증거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서를 읽으셨는데 그 인용한 말씀이 기름부음 받은 자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눅 4장 18∼21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그리고 사마리아의 ‘수가’라 하는 동네의 우물 곁에서 만난 여자와 대화하실 때, 사마리아 여자가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라고 했을 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예수님 태어나시기 수십 년 전부터 로마에 의해 억압받으며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던 유대인들이 기다렸던 메시야는 로마로부터 해방시켜줄, 그리고 무거운 세금 부담을 줄여줄 정치적인 메시야였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 중에서도 영향을 받은 자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눅 24장 21절) 하였고, 예수께서 승천하시던 날에도 예수께 묻기를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행 1장 6절) 하였습니다.

사도들이 비록 초기에는 예수님을 정치적인 해방자로서의 그리스도로 깨달았지만 얼마 후에는 죄악의 종노릇하고 있던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임을 깨달았고, 또한 그리스도는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사도 도마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았으므로 믿지 못하겠다고 하였다가 며칠 후에 자신의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고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장 28절) 라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였고,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 5장 20절) 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어떤 이들은 선지자로,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종으로,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온전하게 깨달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골로새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서에서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하였습니다(골 1장 13∼18절).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인간들과 똑같이 육체를 입고 오심으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자들과 그렇지 않는 자들을 구분하셨습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장 12절) 한 사도 요한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깨달은 자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으니 그를 영접하는 자는 영원토록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발견한 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을 얻은 자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장 14절)하고 말씀하신 그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때에 또다시 외치십니다.

계 22장 17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성경의 예언대로 마지막 이 시대 성령과 신부이시며 이땅에 그리스도로서 친히 임하신 아버지 안상홍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영접하시어 영원한 구원에 이르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교회인 하나님의 교회에서 아버지 안상홍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값없이 공로없이 허락해주시는 생명수로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자녀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http://www.watv.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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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와 구원자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 안상홍님



교회사와 구원자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 안상홍님

BC 4년 로마제국의 호적령(가이사 아우그스도)

              예수님 성탄

AD 27년 예수님 침례(30세때, 세례요한)

AD 31년 예수님 십자가 대속(새언약 유월절 진리 세우심 3년 사역)

AD 70년 로마에 의해 이스라엘 패망

AD 96년 성경 기록 마침

AD100년경 안식일이 로마교회에서 부터 변질 시작

AD 150년경 유월절이 로마교회에서부터 변질 시작

AD 155년경 최초 종교회의(니케아) 개최

................1차 유월절 논쟁

................아니케스터(로마교회)와 폴리갑(서머나교회)의 논쟁

이미 로마의 서방교회에 의하여 안식일(일곱째날 토요일)이 일요일 예배일로 서서히 변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후 안식일과 유월절을 지키는 동방교회를 이단자들로 치부.


AD 197년 2차 유월절 논쟁(니케아 종교회의)

.............로마 교황 빅터(서방교회)는 도미닉규칙(부활절-춘부기준의 첫주일)

.............을 채용하도록 전 교회에 강요. 이를 거절한 동방교회를 책벌.

.............빅터(로마교회 감독)와 폴리크라테스(에베소교회 감독)의 논쟁

AD 220년 칼리스투스 "교황"이념 제시

AD 273년 로마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12월 25을 '불패의 태양 탄생일'로 국경일 선포

AD 312년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 황제 콘스탄틴 기독교로 개종

AD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틴은 '밀라노 칙령'을 내려 기독교 공인

AD 321년 로마 콘스탄틴은 "한주간의 첫째날은 존엄한 태양의 날이므로

.................휴업하라"는 [일요일 휴업령]을, 유대인의 일주일제도를 도입

.................첫째날을 태양의 날(SUN DAY)이라 명명하고, 로마의 우세했던

.................미트라교(태양신)도를 배려[일요일은 예배의 날]로 법령화.

.................안식일 예배 폐지

.................이것이 오늘날 달력의 요일제도의 구체적 이름을 갖게 됨.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 주의 첫날이 일요일로 되어 있고 이 일요일이 휴일이 된 것은 로마 황제의 불멸의 태양숭배 사상속에 태양신과 그리스도를 동일시한데서 비롯 [예배일인 일요일]이 바뀌는 것을 피하였기때문

AD 325년 3차 니케아 종교회의 개최

.............로마 콘스타티누스 황제가 서방교회(주일 중시-일요일)편을 들어

............."부활절"을 동방교회(유월절 기준)와 달리

.............춘분(3월 21일)다음에 오는 보름 후 첫주일로 정하고,

.............유월절을 폐지

AD 325년 성전에 십자가를 붙이기 시작.

AD 354년경 로마 서방교회에서 12월 25일을 참 빛이시며 정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지키기 시작.

 ...............로마 사투르날리아라는 농경신인 "세턴의 제일"이며, 로마의 동짓날

.................태양신 "미트라의 탄생일"이 12월 25일로 로마의 큰 축제

AD 431년 교회와 사무실 안에 십자가 도입. 마리아상 도입.

AD 440년 레오1세가 교황의 개념을 확립 로마주교를 교황이라 칭함

AD 538년 교황권 확립(동고트 멸망)

AD 586년경 뾰족탑(지붕위)에 십자가를 세우기 시작.

5세기경 카톨릭은 유대의 필로의 분류(십계명 출 20:8-)를 그대로 지키다가

............성 아우구스티노의 분류를 지키기 시작.

6세기경 로마교회는 십자고상(그리스도가 세겨진 십자가)를 재가

............이후 개인집마다 하나의 십자가를 지니도록 함

AD 727년 성화상 숭배 논쟁

AD 825년 성화상 숭배 승인

AD 1252년 교황 인노첸시오 4세가 발표한 '박멸에 관하여'라는

...............이단 박해명령 문서가 이후 종교재판소의 기초 문서로 전수

...............로마교회의 가르침을 반대한 사람들을 이단시

AD 1572년 파리에서 성 바돌로매의 축제일에 십만명의 이단자들을 소탕

...............교황청에서는 이 소식에 크게 기뻐함.

AD 1789년 미국 워싱턴 대통령이 12월 26일을 "추수감사절"로 선포

...............추수감사절은 영국의 청교도들의 신대륙(미국)에 건너간 해에.

..............첫 추수한 곡식과 칠면조로 감사기도를 드렸던 관습에서 유래

...............AD 16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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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경 십자군 원정 시작(1096년 이후 200년간 수차례 원정)

14세기경 카톨릭 교회의 분열

1515년 로마 카톨릭 레오10세가 성 베드로 성당의 개축 비용을 위해 면죄부 판매

1517년 마르틴 루터(독일)의 종교개혁(선행보다 믿음으로 구원), 95개조 반박문

1534년 성공회 설립(영국의 헨리 8세)

1535년 장 칼뱅(프랑스)의 종교개혁, 미사 폐지, 교회제도 정비

1545년 트리엔트공의회(45-63)에서 카톨릭의 정통성 주장, 종교재판소 설립
16세기경 프로테스탄트교회에서부터 금요철야예배시작

AD 1560년 장로교 설립(스코틀랜드, 칼뱅-장로회 제도:장로들에 의해 치리)

AD 1609년 침례교 설립(영국, J.스미스)

AD 1739년 감리교 설립(영국, 요한 훼슬리:감독이 관할)

AD 1834년 예수 재림 운동(윌리엄 밀러,1844년까지 10년간)

AD 1844년 제7일 안식일교회 등장(미국, 여선지자 엘렌지 화잇)

AD 1872년 여호와증인 설립(럿셀)

AD 1882년 장로교 국내 입교(19C말, 고종황제시대)

AD 1884년 감리교 국내 입교

AD 1890년 침례교 국내 입교

AD 1901년 성결교회(일본, 키우만)

AD 1904년 제칠일 안식일교회 국내 입교

AD 1907년경 성결교회 국내 입교

..................독립운동가 33인의 한사람이었던 길선주 목사에 의해서
..................새벽기도 시작됨.

AD 1910년 에큐메니칼 운동 추진(세계교회운동,교회일치운동)

..............."집(oikumene)"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

AD 1912년 여호와증인 국내 입교

AD 1918년 안상홍님 성탄(일제강점기 시대)

AD 1929년 바티칸 시국 성립(라테란 조약)

AD 1939년 제 2차 세계대전 발발

AD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 종료(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AD 1948년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이스라엘 독립과 재림 그리스도의 등장)

...............안상홍님 침례(30세) <- 다윗의 위(40년) 예언

...............암스테르담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결실인 세계교회협의회(WCC)발족    

AD 1962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구성

AD 1964년 하나님의 교회 설립(안상홍님)

AD 1984년 안상홍님 마지막 유월절 집례

AD 1985년 안상홍님 승천(2월)...재림 37년 사역 마침
 

2012년 9월 8일 토요일

초기그리스도인들의 역사와 박해3 - 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안상홍님

초기그리스도인들의 역사와 박해3 - 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안상홍님


Ⅲ. 3차 박해기간 (A.D.249-313)

제 3차 박해기간 동안에는 부분적으로 일어난 2차 박해와는 달리 제국 전역에서 진행되었다. 전국적인 박해가 발생한 것은 여러 가지 원인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중에서 주요한 원인 5가지를 든다면 (1)기독교의 급속한 성장 (2) 제국의 경제 및 도덕의 쇠퇴 (3) 로마제국 창립 1000주년의 임박 (4) 교회는 국가내에 국가이며, 따라서 로마제국의 위협적 존재라는 로마 지도자들의 견해 (5) 로마의 쇠퇴가 로마신들이 기독교의 성장을 싫어했기 때문에 내린벌이라는 견해를 들수 있다.


1. 데시우스 칙령과 전국적인 박해
250년부터 251년 사이 데시우스 황제 아래서 기독교가 그 때까지 직면했던 박해 가운데 가장 혹독한 박해가 일어났다. 250년 데시우스 황제는 지방관료와 행정관들에게 정해진 날에 필요한 장소에서 제사를 총괄하도록 명령을 내렸고, 제사를 드린 사람들에게 제사 증명서인 리벨루스를 발급하였다.

데시우스의 명령앞에 교인들은 순응, 타협, 거부, 도피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이떄 로마 교회 감독 코르넬리우스, 예루살렘의 감독 알렉산더, 안디옥의 감독 바빌라스가 순교했다. 그러나 데시우스의 극심한 박해는 다행히 오래가지 못했다.

제국을 통치한 뒤 2년이 못되어 아들들과 함께 살해되었고 갈루스가 그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다. 데시우스의 전사후 잠시 박해가 중단되었지만 갈루스가 들어서면서 박해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그러나 갈루스도 황제의 자리에 오른지 2년이 채 못되어 제거되고, 발레리안이 아들 갈리에누스와 함께 황제가 되었다.
기독교인에 대한 발레리안의 태도는 이례적일 만큼 우호적이었지만 그의 통치 말엽에 257년부터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인의 재산을 몰수 하고 목숨까지도 빼았았다. 발레리안의 박해때에 프리스쿠스, 말쿠스 그리고 알렉산더 세 사람이 사나운 짐승들의 먹이가 되어 순교의 영광을 차지했다.

발레리안이 죽은후 그의 갈리에누스가 황위를 승계하였다.그는 말씀의 사역자들이 자유로이 직무를 수행해도 좋다는 칙령을 발표한 후 43년간 평화가 따랐다.이 기간은 전에 찾아 볼 수 없을 만큽 기독교는 성장했으며,아름다운 교회가 건축되었다. 뿐만아니라 영향력있고 교육받은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동시에 경제,군대,사회적 조적이 놀랍게 발전했다.


2. 디오클레티안 황제 박해
데시우스와 발레리안의 시대가 지난 뒤 이미 권력을 획득하고 있었던 디오클레티안이 황제가 되면서 박해는 또 다시 시작되었다. 그의 통치 초기 교회는 매우 급속이 성장하였다. 그러나 시벨레를 섬기는 이교도이자 기독교를 미워한 그의 모친 영향을 받아 교회에 박해를 가해기 시작했다.

 전국에 칙령을 내려 교회들을 부수고 성경을 불태우며 신자들의 직책들을 박탈하고, 교회 성직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어떻게 해서든 제물로 드리게 했다. 디오클레티안의 박해는 제 3차 박해 기간 동안 가장 길고 무시한 박해였다. 이 기간동안에도 상당히 많은 그리스도인이 순교를 당했다.

니코메디아에 교회를 박해하는 황제의 칙령이 발표되자,훌륭한 가문 출신이며 직위도 존경을 받던 사람이 " 거룩한 열정과 뜨거운 믿음으로 인해 분기하여" 나붙은 칙령을 떼어내어 조각내 버렀다. 그일은 모든사람에게 알려졌으며 " 대담한 행동"을 한 그 사람은 영혼이 떠나는 순간까지 평정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디오클레니안의 박해는 305년 황제직을 사임한 후 잠시 중단되었으나 곧 재개되어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 공인이 있을때까지 계속되었다.


3. 갈레리우스 황제 박해
디오클레티안 사위 갈레리우스가 통치하는 지역에서도 박해가 발생하였다. 사정없이 교회를 핍박하던 갈레리우스는 8년이 되던해부터 박해를 완화하기 시작했다. 그의 태도가 바뀐 것은 그의 중병때문이었다. 그의 몸에는 종양이 생기며, 창자속이 곪게 되었으며 그의 몸에는 지독한 악취가 나게 되었다. 투병이 계속되면서 갈레리우스 황제는 자신이 경건한 사람들을 대적하여 범한 죄에 대한 가책을 느끼기 시작했다. 황제는 먼저 자신을 돌이켜 반성하면서 무엇보다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자백하게 되었다.드디어 갈레리우스 자신의 병이 기독교를 핍박했기 때문에 왔다는 기독교인들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즉시 기독교 박해를 중지하라는 관용의 칙령을 발표하게 되었다. 이 관용의 칙령가운데에는 기독교인들은 서들러 교회를 재건하여 예배를 드리며 제국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갈레리우스의 황제를 기점으로 박해는 약간 완화되었으나 기독교인들의 박해가 완전히 종식된 것은 콘스탄틴 황제에 와서이다.



Ⅳ. 콘스탄틴 황제와 기독교 공인

콘스탄틴은 A.D288년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콘스탄티누스가 죽은후 그의 부하들이 콘스탄틴을 후계자로 임명한후 제국에는 권력투쟁이 시작되었다. 콘스탄틴은 맥시미안의 딸 파우스타와 결혼하여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시켰다.

312년 콘스탄틴은 "이교적 마술을 의지"하고 있던 막센티우스를 로마의 권좌에서 축출하기 위해 위해 이탈리아로 행진했다.

 밀리안 전투 하루전 대낮에 콘스탄틴은 붉은 태양이 이글거리는 하늘에서 승리의 십자가 표시를 보았고 그 위에는 " 이 표지를 정복하라"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이 승리의 표시가 태양신이 보내신 것이라고 확신한 콘스탄틴은 만약 전투에서 이긴다면 태양신의 전사가 되겠다고 서약앴다. 다음날 콘스탄틴의 군대는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한편 동방에서도 유사한 변화가 있었다. 305년 디오크레타안이 막시미안과 함께 퇴위한후 갈레리우스가 아우구스투스의 자리에 차지했다. 갈레리우스는 307년에 그의 친구이자 동료 군인인 리키니우스를 일리리아와 마케도니아를 통치할 아우구스투스로 임명했다.

리키니우스는 정지적인 야심을 갖고 콘스탄틴과 동맹을 맺고 콘스탄틴의 누이를 아내로 맞았다. 313년 콘스탄틴과 리키니우스는 밀란의 칙령(THE EIDCT OF MILAN)이라 알려진 것을 공표했다. 이 밀란의 칙령은 공식적으로 교회에 종교의 자유를 선표한 최초의 선언이었다.

핍박받으며 음성적으로 활동하던 기독교가 밀란의 칙령으로 공식적인 자유를 허용받은 셈이다. 콘스탄틴 대제가 밀란의 칙령을 발표한 결정적인 이유는 전년도에 있었던 밀비안 다리 전튜에서의 승리때문이었다. (단순히 기독교를 정복하기 위해 기독교를 공인한 것이다.)


Ⅴ. 요약 : 교회 생활의 변화
기독교는 많은 핍박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가 되어 교회는 꾸준하게 성장해왔다. 핍박이라는 기독교 장애물이 오히려 기독교를 성장시키는 수단이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애버리트 퍼거슨이 지적한 것처럼, "순교는 종종 기독교로 관심을 이끌고 선전도 하는 공개적인 광경이었다. 2세기의 기독교 변증가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맞이한 방식은 그들에게 기독교의 진실성을 확신시켰다고 증언했다. 터튤리안의 대담한 선언- "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은 격언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313년 콘스탄틴 황제에 의하여 기독교가 공인된 후 기독교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기독교 공인으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박해받는 지하종교에서 공인된 종교로 바뀌었고, 그결과 외형적으로 상당히 확산되었다. 새로운 교회 건물이 들어섰고 교회는 국가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자연히 정교의 밀착이 이루어졌고, 교회의 영적인 생명력이 상실하면서 교회에는 세속화 현상이 발생하였다.예배의 형식이 영적인 성도의 교통에서 외형적인 형식 위주의 예전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중심의 종교로 자라나게 되며 정통을 중요시 하게 된것이다.

※박용규, [초대교회사] (총신대출판부,1996), 69-113쪽에서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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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보다 중요한것은 하나님의 말씀인것이다.
이러한 픽박과 박해의 시대를 거쳐 교회는 세속적이 되어 버렸고 초대교회 하나님의 교회 진리는 변질이 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변질된것이 오늘날 교회의 정통으로 자리매김을 함으로 인해 오히려 변질된 교리가 참진리인양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처음으로

초기그리스도인들의 역사와 박해2 - 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안상홍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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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2차 박해 기간 (A.D 98-249)

2차 박해 기간(트리얀 황제 A.D98-117 ,안토니우스 피우스 A.D.138-161)동안에는 박해는 지역에 따라 국부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드러나더라도 그에게는 신앙을 부인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 특징이라고 할수 있다.


1. 트라얀 황제치하의 박해
트리얀의 칙령에서는 네로와 같이 임의적인 박해를 가하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칙령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 첫째는 의도적인 색출은 금한다는 것과 둘째는 익명의 고소는 정부가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 그리고 셋째는 과거에는 그리스도인이었지만, 현재 아니라면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칙령으로 인해 혹독한 박해는 어는 정도 완화되었으며 그리스도인들을 " 잡아들이기 " 위한 수색은 금지되었다.


2. 하드리안 통치의 박해
하드리안은 125년경 아시아의 총독 미누시우스 푼다누스에게 보낸 서신에서 정당한 재판을 거치지 않고서는 기독교인을 처형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이 하드라인의 칙령은 비기독교인들로부터 근거없는 모함을 받는 것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합당한 법적 절차가 있는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며 , 그 재판도 분명한 증인과 증거들이 확보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3.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치하의 박해
'명상록의 저자'이며 스토아 철학의 대변자인 아우렐리우스는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인 경향을 나타내 보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아첨자들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를 참혹하게 박해하기 시작했다.

기독교인들이 채찍에 맞아 온 몸이 찢어져 유혈이 낭자했으며 속살이 드러나고 창자까지 밖으로 터져나왔다. 온갖 종류의 고문을 받은 뒤에 사나운 짐승의 밥으로 던져졌다.

박해의 강도가 점점 심해졌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갖은 고문과 박해속에서 자신들의 신앙을 지켰다. 이 박해로 인해 게르마니투스라는 독실한 청년이 순교했다.

지방 총독의 간곡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힘을 얻어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에 대한 본성적인 두려움을 극복하였다. 게르마니쿠스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사나운 짐승의 밥이 되어 마침내 이 불의하고 무법한 세대로부터 자유함을 얻었다.

박해는 시간이 흐르면서 강화되었고 마르쿠스 아우레릴우스 황제치하에 폴리갑이 서머나에서 순교하였다. 그의 순교의 기사는 다음과 같다.

 " 총독은 그에게 ' 맹세하시오. 그러면 당신풀어 주겠소. 그리스도를 비난하시오.'라고 재촉했다.

폴리갑은 이렇게 대답했다.

' 나는 86년동안 그분을 섬겨왔는데 그동안 그분은 한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이제까지 섬겨온 나의왕 그리스도를 모독할 수 있겠습니까? ..........

이윽고 화형을 위해 마련된 도구들이 그에게 정착되었다. 그들은 그를 큰 못으로 말뚝에 고정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는

'나를 이대로 두시오. 나에게 화형을 견뎌낼 힘을 주실 분께서는 당신들이 못을 박지 않아도 장작더미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견딜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하니님이시여! 당신께서 오늘 이 시간 나로 하여금 순교자의 반열에 , 그리고 그리스도의 잔에 참여하게 하시어 내 몸과 영혼이 성령의 썩지않는 축복속에서 영생의 부활을 얻기에 합당하다고 여기 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나는 신실하고 참되신 하나님이신 당신께서 예비하시고 계시하시고 이루신 풍성하고 가납될 만한 제물로서 당신이 보시는 앞에서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 모든 일을 인하여 당신의 사랑하는 독생자 영원한 대제사장을 통하여 당신을 찬양하고 감사드리며 영광을 돌리나이다. 성부 성자 성령께 이제부터 영원히 영광이 있을지어다. 아멘."

폴리갑에 이어 165년 대표적인 변증가 저스틴도 순교의 대열에 합류했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통치기간인 177년 심한 박해가 고울지방에서 일어았으며 이후 250년까지 박해가 간헐적으로 계속되었다. 그후 막시미누스 통치 3년후에 간헐적으로 진행된 박해이후 평화가 잠시 도래하였다. 박해가 중단된 기간은 복음전파를 위한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 3세기 50년동안 수천명의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고 공동체는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50년에 데시우스 황제가 들어서면서 3차박해가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계속

초기그리스도인들의 역사와 박해1 - 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안상홍님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역사와 박해1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 안상홍님

"나는 86년 동안 그분을 섬겨왔는데 그동안 그분은 한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신 적이 없다 그런데 내가 어찌 이제까지 섬겨온 나의 왕 그리스도를 모독할 수 있겠는가?" -폴리캅-

고대 아테나고라스(athenagoras)에 따르면 기독교인이 박해를 받은 원인이 "무신론과 식인풍습, 근친상간"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독교인이 핍박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황제 숭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로마 제국의 수호신이라고 믿고 있던 황제에 대한 숭배를 거부하는 것은 곧 로마 제국의 안녕을 위협하는 반 국가적인 행위와 마찬가지였다. 자연히 로마의 재난이 발생할 때 마다 기독교인은 비난의 대상의 되었으며, 사자들의 밥이 되었다. 이와같은 박해의 시작은 네로 황제때부터 313년 콘스탄틴과 리키니우스 두 황제에 의하여 기독교가 공인되기까지 계속되었다. 초대 교회 박해는 크게 황제의 고의에 의하여 시작된 1차 박해기간(약 A.D.64-96), 지엽적,국부적으로 진행된 2차 박해기간(약 A.D.98-249)그리고 전국적으로 박해가 진행된 3차 박해기간 (A.D.250-313)으로 대별할 수 있다.


Ⅰ. 제 1차 박해기간(A.D.64-96)


1. 네로 황제 박해
네로 황제가 재임하던 주후 64년에 발생한 대화제 사건은 기독교 역사에 잊을 수 없는 분기점이 되었다. 그가 통치하던 주후 64년 네로는 로마에 발생한 대화제 사건의 원인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린후 극심하게 박해하기 시작했다. 당시 일반들에게 기독교가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네로는 자연스럽게 로마의 대화재 사건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려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수에토니우스(syetibius)가 기독교인들이 형벌을 받은 원인을 기술하면서 " 새롭고 사악한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단체인 그리스도인들 "이라는 표현속에서 찾아볼수 있다. 또한 타키투스도 기독교를 가리켜 "매우 위험한 미신 " 표현에 비추어 볼 때 당시 사람들은 기독교를 옳게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로마의 대화제 사건은 한 인간의 광적인 잔학성을 충죽시키기 위함이었다. 타키투스는 그의 연대기에서 광적인 잔학성을 충죽시키기 위해 그리스도인을 죽였다고 말하고 있다. 유세비우스도 네로의 '극단적인 광기' 때문에 그의 생모와 아내 , 수천명의 사람들을 죽였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통치권을 확고히 다진 네로가 사악한 계획을 세우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신앙을 대적하여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타기투스의 연대 , 로마의 클레멘트 <고린도에 보낸 서신 > , 고린도의 디오니시우스의 설교를 통해서 네로의 잔학성과 하나님을 인정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을 알수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짐승의 가죽으로 싸서 개들에 의해 찢기우기도 하고 십자가에 못박혔다 . 혹은 화형이 되어, 해진후 밤을 밝히는 일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네로는 그 광경을 위해 자신의 정원들의 개방하고 자신은 기수의 복장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아니면 마차를 몰고 다녔고 그동안 서커스에스는 쇼가 공연되었다. 그러므로 가혹하고 본보기적인 형벌을 받기에 마땅한 범죄자들이라 할지라도 사람들 사이에 동정심이 생긴 것은 사실상 그 일이 공중의 선을 위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광적인 잔학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 타기투스의 연대기 중에서)

"우리는 훌륭한 사도들을 면밀히 살펴보시다. 베드로는 한 두 번이 아닌 여러 번의 노력을 통하여 불의를 극복하였으며 따 라서 그의 증거는 영광의 자리에 도달했던것입니다. 열정과 노력으로 바울은 인내의 상을 받앗습니다.....바울은 동서에 복음을 전했을 때 그는 자신의 믿음에 합당한 고귀한 명성을 얻었습니다." (로마의 클레멘트 고린도에 보낸 서신 5장 )

"당신은 이처럼 이 권면에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와 고린도에 심어 놓은 번영의 씨앗을 섞어 놓았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에 순교했다." (고린도의 감독 디오니시우스의 설교중에서)


2. 도미티안 황제 박해
도미티안 황제는 모든 면에서 네로의 전철을 밝았다고 한다. 유세비우스는 네로와 도미티안의 박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그는 로마에서 상당히 많은 귀족들과 저명인사들을 부당하게 살해했고.....마침내 그는 하나님을 미워하고 적대하는 일에 있어 네로의 후계자가 되었고 " 또한 터툴리안도 도미티안이 네로와 " 동일한 일"을 행하려 했으며 " 잔인성에 있어서 실질적인 네로의 후계자였다"고 말한다. 도미티안 자신의 아내였던 도미틸라를 유배시키는 한편, 그의 집정관이었던 자신의 조카 플라비우스 클렌멘스와 그의 두 아들을 살해했다. 사도 요한이 말씀을 증거하였다는 이유로 밧모섬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2012년 9월 5일 수요일

원시 기독교2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 안상홍님



원시 기독교2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 안상홍님

마지막으로 니케아 회의 시대가 되겠습니다. 이 시대는 AD313년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을 통한 기독교 공인 시기에서부터 590년 그레고리우스 1세의 즉위시까지를 말합니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604년 그레고리우스 1세의 죽음까지를 경계로 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계속되는 박해에도 그리스도인들이 황제 숭배를 거부하자,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13년 기독교를 승인하고, 회유하게 됩니다. 사실상 박해의 종결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데오도시우스 1세 때에는 드디어 기독교가 국교로 정해집니다. (콘스탄티누스 시대의 로마는 다신교 국가로서 태양신 미트라를 섬기는 미트라교가 국교였다고 합니다.)


박해 중에는 신앙 뿐이어서 사실 신학적 논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파들이 등장했지만) 그러나 박해가 끝나면서 교리 문제가 등장하고 신학자들이 많이 나왔으며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아타나시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입니다.


AD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21년에 일요일 휴업령을 내리고, 일요일을 거룩한 태양신의 숭배일로 제정하여 기독교의 예배일과 동일시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통일되지 않은 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차례 세계 대회가 소집이 되었고, 근본 교리가 제정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고, 성만찬 일자와 아리우스파 등의 문제에 대해서 교계의 통일을 꾀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155년경과 197년경 서방과 동방간에 성만찬 일자 문제가 달랐으므로, 콘스탄티누스는 서방(로마) 교회의 손을 들어주어서 성만찬을 부활절에 행하기로 한 것입니다. (유월절에 성만찬을 행하던 것을 폐지) 다른 이유는 유월절이 유대교의 가장 큰 절기였으므로, 유대교와의 결별을 선언하기 위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명쾌한 이론가였던 아리우스는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다른 피조물임을 주장하여 삼위일체설을 반박하였고, 이에 대항하여 아타나시우스는 삼위일체설을 옹호하며 아리우스를 공격하였습니다. 결국 아리우스와 아리우스를 추종하던 자들은 일루리아로 추방을 당했고, 아타나시우스의 승리로 삼위일체가 확립이 되었습니다. 이 1차 세계 종교회의를 통하여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기독교의 보호자' 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굳혔고, 향후 기독교에 많은 영향를 끼치게 됩니다. 그리고 로마 교회의 교권도 강화되었습니다. (황제의 배후로 인함)


세계 종교회의는 그 후 8차까지 열렸으며 많은 교리들이 수정되고 보완되었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수도원들이 건립되었고 금욕주의로 대표되던 헬라 철학의 스토아 학파의 금욕사상이 유입되어 수도사들은 금욕적 생활을 하게 됩니다. (유대교의 영향도 있었음)


또한 이 때 등장한 풍속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성화 숭배, 성자 숭배, 유물 숭배, 성모 숭배, 천사 숭배 등등이 있으며, 354년에는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풍속이 등장하였습니다. 이 크리스마스의 기원은 로마의 3가지 축제인 새터날리아, 시길랄리아, 브루마리아 등입니다. 로마의 국교였던 태양신 미트라의 축일이기도 했던, 동지날입니다.


기독교가 국교로 된 후인 431년에는 십자가가 예배당 안에 걸리게 되었고, 586년에는 교회 꼭대기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모두 다 이 시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니케아 회의 시대에는 외형적인 박해는 없었지만, 내부적으로는 교리적 박해가 있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교리의 변질)

원시 기독교 형성 과정을 대략 적어 봤습니다. 사도 시대는 기독교 기반 형성, 사도후 시대는 박해 속에서의 신앙과 분열의 조짐, 니케아 회의 시대는 박해의 종식과 평안, 그리고 교리의 변질이라는 말로써 대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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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를 모르고선 초대 하나님의교회 진리를 고수 할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 어떤 배경으로 초대 하나님의교회 진리가 변질이 되었는지 올바로 알고서 그에 합당한 믿음의 길을 걷고 신앙생활을 해야지만이 구원으로 나아갈수가 있게 되겠습니다.
어머니하나님과 안상홍님께서 회복해주신 초대 하나님의 교회 진리를 성경을 통하여 역사를 통하여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시기는 참이 거짓인양 감추어 버리고 거짓이 참인양 내세우는 마귀의 훼방이 심한 시대입니다. 성경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셔서 영원한 구원이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영생얻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처음으로

원시기독교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 안상홍님



원시기독교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 안상홍님


원시(原始/元始)

[명]①시작하는 처음. ②처음 시작된 그대로 있어 발달하지 아니한 상태. ¶원시 신앙/원시 밀림 지역/다른 교우들도 얼마 되지 않은 가재 집물을 챙겨 팔아 변비한 두메나 심심산중으로 숨어들어 원시에 가까운 비참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한무숙, 만남≫/짐승 껍질로 살갗을 가리는 원시의 상태로 인간이 환원하기를 원하지는 않으리라.≪유치환, 나는 고독하지 않다≫


원시 기독교라고 하면 '초대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관점에 따라서는 니케아 회의시대까지를 아우르기도 합니다.

먼저 교회의 역사는 고대, 중세, 근세, 최근세(현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고대는 크게 사도 시대, 사도후 시대(속사도 시대), 니케아 회의 시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고대사의 시대 구분

고대사 (AD 1~590) :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그레고리우스 1세 즉위시까지
 1) 사도 시대 (AD 1~100) : 그리스도로부터 사도들의 활동이 끝날 때까지
 2) 사도후 시대 (AD 100~313) :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허락할 때까지
 3) 니케아 회의 시대 (AD 313~590) :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 즉위시까지



먼저 사도 시대의 특색을 살펴보면 기독교가 각지에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헬라, 소아시아, 로마 등) 그리고 이 시대에 신약성경이 기록되었습니다. 또 사도들이 순교하였고, 바울의 개종과 전도에 의해 세계 종교로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독교의 기원은 침례 요한의 출현과 예수 그리스도의 도성인신(道成人身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심), 그리고 그의 사역과 새 언약을 세움, 12제자 훈련, 오순절 성령 강림 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 조직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시기는 7집사 선정했을 당시입니다. 7집사는 스데반, 빌립, 니골라 등입니다.


사도 시대에 로마는 문화의 중심지로서, 편리한 교통망과 헬라어와 라틴어로 통용되어 전도에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분산으로 각지에 시나고그(회당)이 세워져 이것이 또한 전도에 활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도덕적 타락(노예 매매, 잔인한 풍속, 부모의 자녀 살해권 등)은 기독교 동경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종교 상태는, 잡신과 황제 숭배 등이 성행하였고, 철학 사상(헬레니즘)이 범람했던 시대입니다. 스토아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 플라토니즘과 네오 플라토니즘 등입니다. 이 시대에는 특히 네로와 도미티아누스의 박해가 어마어마했습니다. 도미티아누스의 박해 가운데에 카타콤 생활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사도들은 열심히 순교하며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AD 70년에 일어난 예루살렘 멸망은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유대교 총본산이 함락되었으므로 기독교가 유대교를 능가하게 되었고, 기독교인이 예루살렘 멸망 전에 각지로 탈출하여서 전도의 무대가 확장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도 시대는 요한의 사망 시기로 추정되는 100년 경(혹은 106년)까지로 계수합니다. 이 당시에는 유무상통이라 하여서,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서로 도와주는 공동체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때 당시만 하더라도 건물로서의 교회는 설립되지 않았습니다. (유형의 건물이 없었음.)





사도후 시대는 '속사도 시대' 라고도 부릅니다. 혹은 니케아 회의 이전 시대라고도 부릅니다. 이 시기에도 온갖 박해가 이루어졌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전도 활동이 왕성했습니다.


이 시대는 또한 사상의 발표 시대라고도 합니다. 헬라 철학, 동방 종교, 유대의 율법주의의 이입으로 사상적 혼란이 왔던 것입니다. 특히 사도 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그노시스주의(영지주의), 네오 플라토니즘(신 플라톤주의) 등 절충 조화의 사상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유명한 인물로는 클레멘스, 이그나티우스, 폴리카르푸스, 헤르마스, 이레니우스, 오리게네스 등이 있으며, 이때부터 분열의 조짐은 희미하지만 있었습니다.


155년경 폴리카르푸스와 로마 감독 아니케터스는 성만찬 문제를 놓고 대립하였습니다만, 서로 양편을 설복시킬 수 없어서, 서로 다르게 지키기로 합의했고, 197년 경에는 에베소 감독 폴리크라테스와 로마 감독 빅터가 논쟁하였고 빅터는 폴리크라테스를 파문시키기로 하였으나 반대에 부딪쳐 취소되었습니다. 기실 이때부터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조금씩 분열하는 조짐을 보인 것이었습니다.
(논쟁 주제는 성만찬 날짜 문제 : 닛산 14일의 유월절인가, 그 다음 일요일에 오는 부활절인가하는 문제)


또한 이 시기에 해당하는 3세기에 로마 제국 동방에서 마니교가 발흥하였습니다. 영지주의(그노시스파)와 비슷한 점이 있으나 그 근원이 동방이며, 서방으로 흘러와서 기독교와 접촉하고 기독교적 요소를 흡수하였습니다. 페르시아의 이원론을 근거로 이 세계를 광명과 흑암의 투쟁 무대라고 해석하였으며, 13세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 시기까지 네로와 도미티아누스(사도 시대 박해 황제)의 박해를 포함하여 10대 박해가 있었습니다. 이 박해에 관한 것은 자세히 서술하지 않겠습니다. (너무 많아서)


계속

순교자 '폴리갑'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 안상홍님



순교자 '폴리갑'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 안상홍님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갑'

폴리갑은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임명된), 아시아의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다. 기록의 미비로 인하여 그의 탄생이나 성장 과정 등에 대한 것은 알 수가 없지만, 그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가 변질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의 새 언약의 진리를 수호하고자 노력한 정신은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폴리갑'은 사도들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으며, 사도들에 의해 서머나 교회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폴리갑의 믿음과 유월절

그는 항상 자신이 사도들로부터 배운 것, 교회가 전해준 것, 그리고 참되고 유일하고 참된 신앙을 전파했다. 폴리갑은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모범적인 신앙 생활을 함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심지어 유월절로 논쟁을 벌였던 로마 감독이었던 '아니케터스(Anicetus)' 조차도 그를 존경하였고, 폴리갑이 사도 요한을 비롯한 다른 사도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켜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니케터스는 폴리갑에게 더 이상 유월절을 지키지 말라고 권할 수 없었다고 한다. (유세비우스 교회사 297쪽)




폴리갑의 순교  

‘안토니누스(Antoninus)가 로마의 황제로 있을 때(제위기간 : 주후 138∼161년), 아시아 지역에 큰 박해가 일어났다.
폴리갑은 교회에 평화를 주시기를 밤낮으로 기도했다. 체포되기 사흘 전 그는 꿈 속에서 자기가 베고 자던 베개에 갑자기 불이 붙어 타버리는 환상을 보았는데, 꿈에서 깨어난 그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불에 타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순교를 각오하고 있던 그는 형제들의 간곡한 청에 의해 가까운 곳에 피신해 있었다. 그러나 박해자들은 그곳까지 쫓아왔다. 다락에 있었기 때문에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기에 도망치지 않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쾌활하고 온유한 얼굴로 그들을 대했다. 폴리갑은 그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시켜서 대접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만 방해받지 않고 기도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박해자들은 자기들이 그토록 체포하려고 열성적으로 쫓아다녔던 사람이 이처럼 훌륭한 노인이라는 사실에 놀랐기 때문에 기도하는 시간을 허락하였다.

서머나 시로 잡혀간 폴리갑은 경기장으로 끌려나갔다. 총독은 ‘폴리갑'인가를 물은 후,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부인하라고 종용하였다.

총 독 : 그리스도를 비난하시오, 그러면 당신을 풀어주겠소!
폴리갑 : 나는 86년동안 그분을 섬겨왔는데 그동안 그분은 한 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이제까지 섬겨온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겠습니까?
총 독 : 나는 사나운 짐승들을 준비해 두고 있소!, 만일 당신이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당신을 그 짐승들에게 던져버리겠소!
폴리갑 : 그 짐승들을 부르십시오, 우리는 선을 버리고 악으로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악에서 돌이켜 덕을 택하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총 독 : 만일 당신이 짐승들을 멸시하며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화형에 처하겠소!
폴리갑 : 당신은 잠시 붙었다가 곧 꺼져버리는 불로 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장차 임할 심판과 악인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형벌의 불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지체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원하는대로 하십시오.


죽음 앞에서도 폴리갑은 확신과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고 그의 얼굴은 은혜로 충만했다. 총독은 전령을 불러 ‘폴리갑이 기독교인이라고 고백했다' 고 선포하게 했다.
서머나에 있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의 성화로 화형장으로 끌려간 폴리갑. 화형을 시키기 위해 큰 못으로 그를 말뚝에 고정시키려 했을 때, 그는 당당했다.

“나를 이대로 두시오. 나에게 화형을 견뎌낼 힘을 주실 분께서는 당신들이 못을 박지 않아도 장작더미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견딜 능력도 주실 겁니다"

“당신 앞에 살고 있는 모든 천사들과 천군들과 피조물, 그리고 모든 의인들의 하나님이시여! 오늘 저는 신실하고 참되신 하나님 앞에 가납될만한 제물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이제부터 영원히 영광이 있을지어다. 아 멘"

그가 ‘아멘'으로 기도를 마치자 집행인들이 불을 붙였다. 그러나 그의 육신은 불에 타지 않았다 그래서 박해자들은 그를 칼로 찌르라고 명령했다. 칼로 그의 몸을 찌르자 피가 솟구쳐 올라 불이 꺼져 버렸다. 결국 박해자들은 숨이 끊어져 고통을 잊은 그의 시체를 불에 태웠다고 한다.




우리의 교훈  
신앙의 자유가 없었던 암흑시대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끝까지 지키며 스스로 ‘그리스도인'임을 자부했기에 순교를 당한 폴리갑의 믿음의 생애는 우리들의 연약한 믿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안상홍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앞서 걸어가시사 대로를 평탄케 해 주신 이 믿음의 길 위에서 두려울게 무엇이랴!
우리에게 닥쳐오는 온갖 핍박과 어려움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희생과 고통, 그리고 신앙의 자유가 없던 시대에 자신의 믿음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온갖 고문과 고통 속에 죽어간 순교자들의 고난에 족히 비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무엇이라 외쳤는가! 베드로, 요한, 바울 … 등 여러 믿음의 선진들의 신앙과 아울러 폴리갑의 믿음은 말세를 만난 우리들 신앙의 좋은 표본이다.

마귀는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기 때문에 최후 발악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 믿음의 선구자가 되신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먼저 믿음의 길을 걸어갔던 순교자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그리스도의 진리의 나팔이 이 세상에 울려 퍼지도록 힘껏 외치자!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http://www.watv.org/
패스티브닷컴 http://pasteve.com/


2012년 8월 31일 금요일

로마제국(역사)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 안상홍님, 김주철


로마제국(역사)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 안상홍님, 김주철

기원전 753년 4월, 로마 왕국이 세워졌다. 왕국에서 공화국으로, 공화국에서 다시 제국으로 변신을 거듭한 끝에 몰락한 로마는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지중해를 제패하여 서구인들의 공통된 뿌리가 되었다. 역사상 로마보다 큰 영토를 차지한 나라는 있었지만 로마만큼 여러 문명권의 수많은 나라들을 지배했던 강한 제국은 없었다.



유럽인들의 끝없는 향수, 로마

유럽 - 서방 선진국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알려진 이 지역은 일찌감치 국가적 통합 움직임을 보여왔다. 가까이는 2차 대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51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와 베네룩스 3국이 모여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설립했고 이어 유럽경제공동체와 유럽원자력공동체가 발족했다. 이 세 단체는 개별 행정부와 입법부를 통합하여 다시 유럽공동체(EC)가 되고, 1990년대 들어 유럽연합(EU)으로 변모하면서 정치, 경제적인 면에서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유럽 대륙을 하나로 묶어주는 정신적인 배경은 무엇일까? 이는 그들이 공통된 역사, 문화적 뿌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유럽은 2천 년 전 로마가 제패한 지역이다. 로마는 서구사상의 2대 원류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로마식으로 재구성하여 유럽 전역에 퍼트렸다. 그리스의 건축과 인간중심의 사고, 신 중심의 기독교 사상을 자기 스타일로 변용한 로마인들은 강력한 군대를 바탕으로 약 500년 이상이나 서양의 패자(覇者)로서 그 위세를 떨쳤다. 멸망 이후에도 로마는 법률과 로마 카톨릭, 패권주의 등 여러 가지 물질적·정신적 유산을 오늘날까지 남겼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포에니 전쟁의 승리로 많은 전리품과 배상금을 얻은 데다가 방대한 영토가 속주로 편입되고 패전국 백성들이 노예로 몰락하자 로마는 매우 부유해졌다. 그러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매우 심화되어 귀족들은 값싼 노예 노동력을 바탕으로 대농장(라티푼디움)을 경영하여 부를 더욱 축적한 반면, 오랜 세월 군인으로 전쟁에 참전했던 자작농(평민)들은 기반을 잃고 소작농이나 유민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고자 기원전 2세기경 호민관에 당선된 그락쿠스 형제가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지만 정적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이후 100여 년간 로마 정국은 혼란을 거듭한다. 정적들을 학살하며 공포정치를 단행하던 마리우스, 술라 같은 독재자들이 모두 세상을 뜬 후 혼란기의 로마를 평정한 사람이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카이사르는 당대 최고 부호였던 크라수스, 지중해 일대의 해적을 평정하여 명성을 높인 장군 폼페이우스와 손을 잡고 일명 ‘삼두정치’를 실행했다. 그는 정치·군사적 재능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로마인들을 사로잡았다. 집정관에 당선된 기원전 59년에는 여러 개혁적인 법안으로 민중의 지지를 받고 이어서 속주 갈리아의 총독으로 부임하여 기원전 50년까지 로마에 반기를 든 갈리아 부족들을 평정하여 무훈을 세웠다. 그 사이 크라수스가 사망하고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가 대립하게 되자 원로원의 보수파들은 폼페이우스의 편을 들어 카이사르를 제거하려 했다. 무장을 해제하고 로마로 귀환하라는 원로원의 통고를 받은 카이사르는 심사숙고 끝에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격했다. 폼페이우스는 쫓겨 테살리아로, 이집트로 패퇴했다가 암살당했다. 카이사르는 이집트에서 왕실의 내분을 평정하고 자신에게 의탁한 클레오파트라 7세를 왕위에 복귀시켰다.

로마로 돌아와 종신 독재관이 되어 왕이나 다름없는 권력을 장악한 카이사르는 공화파들에게 살해당했다. 이 혼란을 틈타 카이사르의 부장 안토니우스와 레피두스, 카이사르의 양자 옥타비아누스가 정권을 잡고 암살자들을 몰아내었다. 이후 옥타비아누스는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연합군을 악티움에서 격파하고 로마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었다. 원로원은 내전을 종식시킨 그에게 ‘아우구스투스(존엄자)’라는 칭호를 바쳤고, 그는 스스로 로마의 ‘프린켑스(제1의 시민)’를 자처하며 공화정을 유지하는 척했지만 군의 최고 통수권자였고 호민관 특권을 가짐으로써 원로원의 의결도 거부할 수 있어 사실상 황제나 다름없었다. 아우구스투스의 사망 후에는 그의 유언에 따라 후계가 결정되었고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도 세습되었다. 종교적으로도, 카이사르 이래 로마 황제들은 ‘폰티펙스 막시무스’라는 국가 대제사장직을 종신토록 가지고 있었으며 죽은 뒤에도 황제는 항상 신격화되었다. 



“기독교가 로마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로마가 기독교를 정복했다”

로마는 전통적으로 다신교를 믿었을 뿐만 아니라 죽은 황제나 황후를 신으로 격상시켰으며 속주민들에게는 그들의 전통 신들을 믿는 것까지 허용하였으나 곧이어 큰 변화가 일어난다.

아우구스투스가 통치하던 기원전 4년경, 이두메의 토후 출신 헤롯왕이 다스리던 로마의 속국 유대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했다. 그가 가르침을 펴기 시작한 것은 2대 로마 황제였던 티베리우스 때였다. 그의 파격적이고 개혁적인 가르침에 반발한 유대교 지도자들은 총독이었던 폰티우스 필라토스(빌라도)에게 예수의 처형을 요구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의 십자가에 처형당했으나 그의 부활과 승천을 믿는 제자들에 의해 이 새로운 종교가 로마 제국 내에 빠른 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유력한 가문 출신으로 로마 시민권자였던 바울이 유대교에서 개종한 뒤에는 그의 적극적인 전도여행으로 그리스와 소아시아 여러 도시, 그리고 로마 시까지 기독교가 퍼졌다. 기독교도가 제국 내에서 폭발적인 숫자로 증가하자 차츰 로마 황제들은 이들에게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로마에는 기독교도에 대한 그릇된 풍문이 퍼졌고 황제 숭배 거부로 처형당하는 기독교 지도자들도 생겨났다. 제5대 황제 네로 때에 이르면 기독교도들이 로마 시가지가 거의 전소된 대화재 사건의 주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과거보다 더 대대적인 박해를 받게 된다. 기원후 64년, 로마 시의 기독교인 수백 명이 체포되어 십자가형, 화형을 받거나 야수의 먹이가 되는 식으로 잔혹하게 처형되었다. 네로와 도미티아누스 등 몇몇 폭정으로 유명한 황제들이 기독교를 탄압했을 뿐 아니라 이후의 5현제 시대와 군인황제 시대의 혼란기에도 기독교 탄압은 종종 있었다. 112년경, ‘5현제’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황제 트라야누스도 소아시아 총독과 교환한 서신에서 “기독교도라는 그 자체만으로 처형할 수 있다”고 했을 정도다.

3세기 중엽 이후부터 탄압은 제국 전역에 미치고 정도도 점점 심해진다. 특히 디오클레티아누스가 303년부터 가한 박해는 기독교도를 완전히 소탕하겠다는 황제의 의지가 반영되어 가장 극심했다. 그러나 전대미문의 탄압이 가해진 지 10년 만에 상황은 급반전한다.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가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것이다.
과거의 기독교 박해 정책은 기독교 우대 정책으로 바뀌었다.
로마의 대제사장인 황제가 기독교의 보호자를 자임하자 국비로 교회가 세워졌으며 기독교 성직자들에게는 재판권이 부여되고 세금과 부역이 면제되었다.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믿었던 교회에는 황실 가족과 귀족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런 우대정책으로 불과 한 세기가 지나지 않아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된다(392).

이와 같은 변화에 대해 “기독교가 로마를 정복했다”고 보는 역사가들도 있지만 실상은 “기독교가 로마에 정복당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로마 카톨릭은 로마화된 기독교요, 로마의 종교였다. 황제 숭배를 그토록 거부했던 기독교인들은 황제가 ‘교회의 보호자’로 나서자 황제의 뜻을 전폭 수용했다. 황제는 여전히 로마의 최고 대제사장답게 종교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교회를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다양한 신들의 조각은 비슷한 모습의 성인상으로 대체되었고, 로마인들이 당황했을 때 ‘이런, 제기랄’ 이라는 뜻으로 유피테르나 헤라클레스 같은 신의 이름을 내뱉던 풍습은 ‘하나님 맙소사(Oh, my God)!’ 또는 예수(Jesus)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12월에 흥청거리던 사투르날리아 축제가 크리스마스로 바뀐 것처럼 신들에게 제사하며 즐기던 로마의 축제일은 기독교의 축제일로 탈바꿈했다. 



로마의 분열과 멸망

로마가 멸망한 것은 476년이지만 사실 이전부터 쇠퇴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3세기 중엽부터 군인황제들의 난립으로 크나큰 정치적 혼란을 겪은 데다가 경제적으로도 심각한 인플레가 계속되었다.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신도시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하고 방어가 용이한 그곳으로 수도를 옮겨버렸다. 사실 로마는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이민족인 갈리아인들은 난을 일으켰고 사산조 페르시아와 싸움에서 발렌스 황제가 전사하는 등 군사적으로도 위기가 거듭되었다. 특히 용맹하기로 이름난 게르만족들은 4세기 후반부터 수시로 국경을 침입했다.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테오도시우스 황제 사망 후에는 제국이 완전히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되었다(395).

황제가 떠나버린 이후로 로마 시에서는 로마 주교의 힘이 막강해져 나중에는 동로마의 황제로부터 독립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교황이 되고 로마는 종교적 중심지가 된다. 그러나 이탈리아 반도로 속속 남하하고 있었던 게르만족이 문제였다. 그들은 이전에도 가끔 제국 내부로 들어와 약탈을 일삼기는 했으나 일부는 로마군 용병으로 편입되거나 이주민으로 정착하기도 했었다. 375년, 게르만족들은 볼가 강을 건넌 훈족의 압박에 밀려 로마 국경을 넘어들어오더니 5∼6세기에는 아예 로마 제국 내에 임의로 독립 왕국을 세웠다. 결국 게르만족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서로마제국은 멸망한다(476). 로마에는 롬바르드(북이탈리아), 프랑크(프랑스), 부르군트(남프랑스), 동고트(이탈리아, 동유럽), 서고트(에스파냐), 반달(북아프리카), 헤룰리(이탈리아), 수에비(포르투갈), 알라만(독일), 앵글로-색슨(영국) 등 게르만 왕국들이 속속 들어섰다.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동로마제국은 ‘비잔틴제국’으로 불리며 1453년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존속했지만 더 이상 로마 제국의 영광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게르만 왕국들이 등장한 옛 서로마 지역은 로마 카톨릭이라는 종교권으로 새롭게 통합되었다. 특히 프랑크 왕국은 로마 교황과 손을 잡고 서유럽의 강자로 부상했으며 800년, 카를 대제가 교황으로부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의 관을 받아씀으로써 로마제국은 형식적으로 재건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은 프랑크 왕국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로 삼분된 후 한때 명맥이 끊겼으나 독일의 오토 1세가 다시 교황을 통해 황제의 관을 받음으로써 19세기초까지 내려오다가 소멸했다. 그 사이 서유럽에서는 많은 나라들이 패권을 다투었지만, 옛 로마제국의 실질적 지배자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로마 교황이었다.


로마의 유산 - 법, 무력에 의한 평화, 종교

16세기의 종교개혁과 19세기 이탈리아의 통일로 교황의 세력은 약화되었다. 이탈리아는 1차대전 때에 연합국으로 참전하여 승리했으나 2차대전 때에는 독재자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독일의 히틀러와 연합하여 패전국이 되었다. 이탈리아 통일 후 정부와 대립하고 있던 교황은 2차대전 중 무솔리니와 라테란 협정을 맺었다. 이로써 이탈리아 로마 시 내부에 교황청의 절대적 주권을 인정한 바티칸시국(市國)이 성립되었고 로마 카톨릭교회가 이탈리아의 유일한 국교임이 강조되었다. 1948년 공화국으로 새롭게 출발한 이탈리아에서도 이 협정은 그대로 유효했다.

뛰어난 법률과 건축, 막강한 군사력, 그리고 종교로 세계를 제패한 로마의 유산은 이탈리아와 바티칸의 교황청, 그리고 서구 세계 곳곳에 남아있다. 과거 로마인들이 건설한 다리와 건축물, 조각은 이탈리아 로마 시를 중심으로 잘 보존되어 있으며 로마법은 서구 근대법의 기초가 되었다. 로마식 종교보편주의는 로마 카톨릭이 계승했고, 로마 제국의 상징 독수리는 유럽 각국과 미국이 앞다투어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았다. 속주민들과 노예들이 그토록 얻기를 원했던 로마 시민권처럼 오늘날 미국 시민권이 그 위력을 발하고, 무력에 의해 이룩한 로마의 평화 ‘팍스 로마나’는 오늘날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이름으로 답습하고 있다. 과거의 로마제국은 현재 수십 개국으로 쪼개져 EU라는 공동체를 통해 다시 옛날의 영화를 회복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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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역사를 통해서 바라보았을때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초대 하나님의 교회가 로마의 억압정책에 의해서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리는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로마의 다신교가 당시 기독교와 혼입이 되면서 순수했던 초대 하나님의 교회 진리가 세속화 되고 변질 되어 버리고 패지되어 버린것이 오늘날까지 내려와 세상에 수많의 교회들의 정통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진정 초대 하나님의 교회 진리를 그대로 회복하여 지키는 교회는 어디일까요? 성경을 통해서 역사를 통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정도의 길로 나아가 올바른 믿음을 회복하여야  신앙생활을 하는 최종목적인 천국에 온전히 입성할 수 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