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5일 수요일

원시기독교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 안상홍님



원시기독교 -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 안상홍님


원시(原始/元始)

[명]①시작하는 처음. ②처음 시작된 그대로 있어 발달하지 아니한 상태. ¶원시 신앙/원시 밀림 지역/다른 교우들도 얼마 되지 않은 가재 집물을 챙겨 팔아 변비한 두메나 심심산중으로 숨어들어 원시에 가까운 비참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한무숙, 만남≫/짐승 껍질로 살갗을 가리는 원시의 상태로 인간이 환원하기를 원하지는 않으리라.≪유치환, 나는 고독하지 않다≫


원시 기독교라고 하면 '초대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관점에 따라서는 니케아 회의시대까지를 아우르기도 합니다.

먼저 교회의 역사는 고대, 중세, 근세, 최근세(현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고대는 크게 사도 시대, 사도후 시대(속사도 시대), 니케아 회의 시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고대사의 시대 구분

고대사 (AD 1~590) :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그레고리우스 1세 즉위시까지
 1) 사도 시대 (AD 1~100) : 그리스도로부터 사도들의 활동이 끝날 때까지
 2) 사도후 시대 (AD 100~313) :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허락할 때까지
 3) 니케아 회의 시대 (AD 313~590) :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 즉위시까지



먼저 사도 시대의 특색을 살펴보면 기독교가 각지에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헬라, 소아시아, 로마 등) 그리고 이 시대에 신약성경이 기록되었습니다. 또 사도들이 순교하였고, 바울의 개종과 전도에 의해 세계 종교로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독교의 기원은 침례 요한의 출현과 예수 그리스도의 도성인신(道成人身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심), 그리고 그의 사역과 새 언약을 세움, 12제자 훈련, 오순절 성령 강림 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 조직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시기는 7집사 선정했을 당시입니다. 7집사는 스데반, 빌립, 니골라 등입니다.


사도 시대에 로마는 문화의 중심지로서, 편리한 교통망과 헬라어와 라틴어로 통용되어 전도에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분산으로 각지에 시나고그(회당)이 세워져 이것이 또한 전도에 활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도덕적 타락(노예 매매, 잔인한 풍속, 부모의 자녀 살해권 등)은 기독교 동경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종교 상태는, 잡신과 황제 숭배 등이 성행하였고, 철학 사상(헬레니즘)이 범람했던 시대입니다. 스토아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 플라토니즘과 네오 플라토니즘 등입니다. 이 시대에는 특히 네로와 도미티아누스의 박해가 어마어마했습니다. 도미티아누스의 박해 가운데에 카타콤 생활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사도들은 열심히 순교하며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AD 70년에 일어난 예루살렘 멸망은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유대교 총본산이 함락되었으므로 기독교가 유대교를 능가하게 되었고, 기독교인이 예루살렘 멸망 전에 각지로 탈출하여서 전도의 무대가 확장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도 시대는 요한의 사망 시기로 추정되는 100년 경(혹은 106년)까지로 계수합니다. 이 당시에는 유무상통이라 하여서,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서로 도와주는 공동체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때 당시만 하더라도 건물로서의 교회는 설립되지 않았습니다. (유형의 건물이 없었음.)





사도후 시대는 '속사도 시대' 라고도 부릅니다. 혹은 니케아 회의 이전 시대라고도 부릅니다. 이 시기에도 온갖 박해가 이루어졌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전도 활동이 왕성했습니다.


이 시대는 또한 사상의 발표 시대라고도 합니다. 헬라 철학, 동방 종교, 유대의 율법주의의 이입으로 사상적 혼란이 왔던 것입니다. 특히 사도 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그노시스주의(영지주의), 네오 플라토니즘(신 플라톤주의) 등 절충 조화의 사상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유명한 인물로는 클레멘스, 이그나티우스, 폴리카르푸스, 헤르마스, 이레니우스, 오리게네스 등이 있으며, 이때부터 분열의 조짐은 희미하지만 있었습니다.


155년경 폴리카르푸스와 로마 감독 아니케터스는 성만찬 문제를 놓고 대립하였습니다만, 서로 양편을 설복시킬 수 없어서, 서로 다르게 지키기로 합의했고, 197년 경에는 에베소 감독 폴리크라테스와 로마 감독 빅터가 논쟁하였고 빅터는 폴리크라테스를 파문시키기로 하였으나 반대에 부딪쳐 취소되었습니다. 기실 이때부터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조금씩 분열하는 조짐을 보인 것이었습니다.
(논쟁 주제는 성만찬 날짜 문제 : 닛산 14일의 유월절인가, 그 다음 일요일에 오는 부활절인가하는 문제)


또한 이 시기에 해당하는 3세기에 로마 제국 동방에서 마니교가 발흥하였습니다. 영지주의(그노시스파)와 비슷한 점이 있으나 그 근원이 동방이며, 서방으로 흘러와서 기독교와 접촉하고 기독교적 요소를 흡수하였습니다. 페르시아의 이원론을 근거로 이 세계를 광명과 흑암의 투쟁 무대라고 해석하였으며, 13세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 시기까지 네로와 도미티아누스(사도 시대 박해 황제)의 박해를 포함하여 10대 박해가 있었습니다. 이 박해에 관한 것은 자세히 서술하지 않겠습니다. (너무 많아서)


계속

댓글 1개:

  1. 어떻게 해서 기독교의 교파가 생겼는지 좀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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